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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네팔 히말라야 누플라

언러브드 2009. 4. 28. 19:53
○네팔히말라야 누플라○

 

 

 - “지겨운 봉우리들, 열 개는 넘은 것 같네요”
 - 아쉬웠던 누플라 등반…5,400m 지점에서 포기하고 하강

 

루클라 비행장에 내려 북쪽(남체 방향)을 보면 제일 높게 보이는 것이 누플라봉(Nuplaㆍ5,885m)이다. 인근 마을에서는 그냥 플라라고 하기도 하고 콩데플라라고도 한다. 남체바자르에서 바로 보이는 것이 콩데샤르이고, 그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 끝에 솟은 봉우리가 누플라다.


베이스캠프로 들어온 이후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전 10시 이후면 가스가 끼어 운행에 많은 지장을 초래한다. 처음 등반 때 데포시켜 놓은 장비를 안개로 찾지 못해 헤매고, 두 번째 등반은 길을 잘 찾아간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엉뚱한 데로 가서 다시 새로운 길을 뚫어야 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보는 시각과 눈앞에서 보는 것이 차이가 많이 난다. 3단으로 이루어진 설원의 끝을 찾기 위해 4번의 등행과 하행을 해야 했다.

 ▲ 등반 중 바라본 풍경. 쿰부 히말라야 경치가 아름답게 펼쳐졌다. 에베레스트(왼쪽 중앙), 
    마다블람(가운데)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측 아래의 설원엔 하이캠프가 뵌다.
 

안개로 인한 등반의 어려움을 감지하고 계속 아침 출발 시간을 당겨 보지만, 한참 움직여야할 시간에 안개로 앞을 볼 수 없어 어려움이 여간 아니다. 첫 등반과 두 번째 등반 때 모든 장비를 올렸다. 로프가 너무 무거워 모두들 지고 가는데 힘들고 고소 경험이 없는 대원들은 올라갈수록 더욱 고통을 감내하기 힘든 모양이다. 그래서 매일 끼는 안개로 인해 대원들이 길을 헤매거나 혹 생길지 모르는 링반데룽(환상방황)에 대비해 대나무를 잘라 와 12개의 표식을 만들고, 다음 등반 때 중요한 포인트에 꼽았다.


첫 설원에서 올라갈 길을 찾아 두 번째 설원으로 진입하는 길을 찾는 데만 4일이 소요됐다. 베이스캠프에서 뻔히 보이는 길이지만 근처에 오면 나타나는 가스로 인해 쉽게 전진할 수 없었다. 첫 설원에서 약 20m 암벽 구간을 지나 두 번째 설원을 200m 정도 올라가면 세 번째 설원으로 가는 암벽지대가 나온다. 세 번째 설원으로 진입하는 데 로프가 150m 소요됐다.


오늘 목표는 마지막 데포시켜 놓은 자리에 캠프를 설치하고 밑에 깔아 놓은 로프를 회수해 위로 올리는 일이다. 11mm 로프 130~160m 짜리 4동을 끌어 올리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눈밭에 있던 것은 습기를 먹어 무게가 더 가중되어 모두 애를 먹고 있다. 인찬형을 제외하고 나와 함께 3명이 하이캠프에 올라가 비박텐트를 설치하고 눈을 다져 바닥을 고른 뒤 매트리스를 깔고 들어가 앉으니 4명이 생활하기에 적당하다.

▲ 눈이 크러스트가 되지 않아 등반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던 구간. 배낭을 벗고 등반하고 다시 가지러 내려갔다가 올라왔다.

 

모두 처음 먹어보는 건조 비빔밥을 한 코펠에 넣고 숟가락만 서로 왔다 갔다 한다. 뭐가 그리 좋은지 지저분하게 먹은 저녁이 마냥 좋단다. 아마 태어나서 처음 맞는 해발 5,000m에서의 첫날밤이어서 그런가 보다. 나는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데 말이다. 대원 중 모두가 고소증세에 맥을 못 추면 등반이고 뭐고 없다. 제발 아침에 일어나서 멀쩡하기만 기대해본다.

 

간단하게 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오늘은 모두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로프를 이동시켜야 한다. 캠프 아래 중요한 부분에 한 동만 설치하고 나머지는 위로 올려 최대한 높이 고정로프를 깔기로 했다.

▲ 올라가는 데 매우 힘들었던 오버행 구간.

 
가스가 또 끼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 오른쪽 사면은 대체적으로 눈이 쌓여 있지만 크러스트가 안돼 등반하는 데 어려움이 많고, 왼쪽 사면은 수직에 가까워 역시 등반이 어려웠다. 능선이 있는 곳은 어김없이 수직벽과 오버행으로 버티고 있어 길을 찾아 올라가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캠프를 치고 첫날 올라간 고도가 100m인데 로프는 3동이 들어갔다. 상대적으로 고도에 비해 등반선이 심하게 오르락내리락 해서다. 베이스에서 출발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어 오늘 등반은 오후 5시까지 하기로 하고 열심히 올라갔지만, 그게 고작 100m의 고도를 올리는 것으로 끝나다니-.
▲ 베이스캠프에서 본 누플라 전경. 우측 봉우리가 콩데샤르(6093m)이고 텐트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누플라다.

저녁에 등반을 끝내고 캠프에 다시 모여 내일부터 비박해나가는 일정에 대해 의논한다. 고소에서 약간 체력이 열세인 강재영씨와 정욱은 캠프에 잔류하고 나와 상훈 둘이 등반을 계속하기로 했다. 마지막 등반을 위해 또 다시 배낭을 꾸렸다(이상은 유학재 대장의 기록이며 다음은 박상훈 대원의 기록).
 
대장님의 말씀대로 재영형과 정욱형은 C1에 남고 대장님과 나 둘이서 두 형이 챙겨주는 스프를 맛나게 먹고 비박 준비를 하고 출발했다. 어제 설치한 고정로프를 따라 움직이는 데도 힘이 들었다.
 
-“선생님, 코펠을 안 가져 왔네요!”
 
자바위만 지나면 내일 정상을 밟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제 설치한 고정로프의 마지막 부분까지 가서 다음 피치 루트파인딩을 했다. 좌측으로 돈 다음 다시 우측으로 진행해서 약 2m 높이로 솟은 바위를 넘어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이때 잠시 고민하던 대장님은 로프를 더 달라고 했다. 바일에 로프를 묶어 던진다. 한 번, 두 번 계속 던졌다. 여러 번 던진 끝에 바일이 바위 상단부의 홈에 걸려 힘을 받았고 그 바위를 넘을 수 있었다.
▲ 오버행 구간을 넘어서서 주마링을 하고 있다(유학재 대장).
 
첩첩산중이란 이런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그 고비를 넘기고 나니 앞이 탁 가로 막혀 있다. 크러스트도 안 된 설사면으로 다시 우측으로 트래버스했다. 트래버스 후에는 다시 직벽에 가까운 오버행이 섞여 있는 구간이다. 바로 우측으로 이동이 안 돼 약 1.5m 정도 상단에 캠을 설치, 하강하면서 우측으로 팬듈럼하여 직상했다. 도저히 배낭을 메고 등반이 되지 않는 험난한 구간이어서 대장님은 배낭을 벗고 등반하신 다음 고정하고 다시 하강해서 배낭을 지고 올랐다.
 
이곳이 베이스나 C1에서 보던 사자바위 위였다. 여기서 간식을 먹고 다시 우측 설사면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아뿔싸! 그 무렵 나는 갑자기 생각났다. 코펠을 빠트리고 온 것이다. 고민, 또 고민 끝에 나는 이실직고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제가 죽을죄를 지었는데요.”
“뭔데?”
“코펠을 안 가져 왔는데요.”
“에이, 뭐. 그게 죽을죄냐. 죽기 전까지 버텨봐야지.”
 
대장님이 고정하고 확보보면서 “상훈아, 힘내라. 10m 남았다” 혹은 “조금만, 조금만 더, 3m만”하며 격려했다. 숨이 목젖까지 차올랐다. 그 피치를 마치고 올랐을 때 대장님의 하사품이 있었다. 후배 제자(한국산악회 등산학교) 대원을 위해 따먹지 않고 참았던 고드름을 따서 입에 넣어 주었다. 말 안 해도 그 때의 감동은 누구나 알 것이다.
▲ 베이스에 모두들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다. 아래 장비들은 그동안 등반 때 사용된 각종 장비 일체.
 
“상훈아. 여기서 비박해도 되겠는데, 한 피치만 더 가보자. 좋은 소식 가지고 올께.”
그러면서 대장님은 한 피치를 더 등반해 올랐다. 뒤따라 올라보니 호텔 같은 비박지다. 그러나 이제 밥을 먹어야 하지만, 코펠이 없다. 수통에 눈을 넣고 녹여보자고 했다. 수통에 물을 넣고 불꽃 위에서 수통을 이리저리 타지 않게 돌린다. 20여 분만에 두 사람이 겨우 목을 축일 정도의 물이 만들어진다. 다시 눈을 넣고 수통을 빙빙 돌린다.
 
“선생님. 저녁은 어떻게 먹죠?”
“우리가 가져온 음식 중에 생으로 먹을 것이 뭐가 있지?”
“라면 1개 하고 건조 비빔밥 1개, 간식이요.”
“건조 비빔밥은 찬 물 넣고 1시간 이상 기다리고 있으면 먹을 수 있으니 이따가 물 넣고 침낭 속에 넣고 자자. 그럼 아침에 먹을 수 있지. 지금은 그냥 생라면 먹자.”
 
- 하강 중 중심 잃고 추락하기도
 
해발 5200m 지점에서 그렇게 저녁을 때우고 C1과 베이스에 무전하고 비박, 아침을 맞았다. 또다시 먹을 물을 만들고 비박지에 배낭을 두고 기본장비만 챙겨 정상으로 향했다. 첨봉 하나만 더 넘으면 답이 나오겠다 싶었다. 그러나 지겨운 봉우리들을 열 개는 넘은 것 같다.
▲ 능선으로 갈 수 없을 때는 이렇게 사면으로 등반해야 했다.
 
70~80도 정도의 경사면이 또 앞을 막는다. 등반자를 확보할 곳이 마땅치 않다. 속으로, ‘만약 잘못 되면 좌측면으로 추락하니 로프를 바위 돌출부 우측으로 넘겨야지’하고 로프를 넘긴다. 다행히 아무 탈 없이 우측 설사면까지 진행했다.
설사면을 오른 뒤 또다시 오른쪽으로 트래버스한다. 트래버스와 오버행의 연속….
 
사실상 마지막 피치가 된 곳에 다다랐다. 정면으로 마등을 타야 오를 수 있는 첨봉이 앞에 있다. 좌측으로 가면 얼마를 트래버스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한참 돌아야 하고, 우측 사면을 보니 한참을 하강해서 가야 한다. 대장님은 그냥 정면으로 마등을 타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일단 우측면으로 가서 루트를 확인했다. 봉우리가 앞으로 3~4개 더 있다. 우측 사면의 지형을 추정해보면 골짜기가 깊은 것이 하강거리가 상당한 것 같다. 바로 앞 봉우리를 넘어도 다음 봉우리를 등반하려면 로프가 필요한데 현재 가지고 있는 로프는 한 동뿐이다. 또한 시간도 여의치 않다. 지금까지의 진행으로 보면 최소 하루는 더 비박해야 정상에 설 수 있고, 정상에서 하강할 때도 한 번은 비박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대장님은 하산을 결정했다.
▲ 하이캠프의 고도를 보여주는 고도계시계. / 등반 초, 유학재 대장이 무료함을 달래려 등산용 주머니칼로 조각한 상.
 
현재 표고는 5,400m. 하루에 고작 표고 200m를 진행한 것이다. 바위 상태는 낙석이 너무 많고 봉우리가 많아 진행속도도 빠르지 못하다. 물론 초보자인 내가 제대로 역할을 못한 탓이 크다. 하지만 대장님의 하산 결정이 마음으로는 아쉽다.
 
기념 촬영을 했다. 한국산악회, 산악연수원, 노스페이스, 영원, 우정사업본부 깃발 등등, 모두 촬영하고 하강을 시작했다. 비박지에서 배낭을 메고서 하강을 거듭했다. 암각에 슬링을 걸고 로프가 잘 빠지게 비너를 걸고 하강했다. 바일을 던져 등반했던 구간에서 로프가 걸려 다시 등반해서 로프를 빼고 클라이밍다운하기도 했다. 한번은 온몸에 힘이 빠져, 하강 중에 중심을 잃어 추락했다. 다행히 대장님이 로프를 당겨 큰 추락은 모면했다.
 
침니 구간 직전의 오버행 하강 전에 로프가 또 걸렸다. 다시 등반하려고 하니 대장님이 그냥 잘라버리라고 했다. 20m 정도 잘라버린 것 같았다. 오버행 하강 후 침니 구간에서 남은 힘을 다 썼다. 침니 상단을 밟고 서면 간단한데, 몰라서 직벽 저깅을 했다.
C1에서부터 정욱형이 물을 가지고 마중나와 있었다. 정말 물을 실컷 마셨다. 로프를 회수하면서 C1에 도착했다. 장비를 정리하고 따뜻한 차와 맑은 물로 하루를 마감하며 베이스캠프에 C1 무사 복귀를 알렸다.

/ 글·사진 유학재·박상훈

출처 : 산들바람의 세상구경
글쓴이 : 산들바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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