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람

[박선영 기자의 Who's Now] 도보여행가 김남희

언러브드 2008. 6. 14. 07:17
[박선영 기자의 Who's Now] 도보여행가 김남희

"길 위로 떠나보세요. 자신과 타인, 현재를 긍정하게 될 거예요"


aurevoir@hk.co.kr  

그의 휴대폰 번호를 누르니 컬러링 음악으로 김동률의 ‘출발’이 흘러나온다.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괜히 가슴이 울렁거린다.

여행충동으로 도시인들의 마음이 들썩이는 여름의 초입, 도보여행가 김남희(38)씨를 만났다. 2006년 초 내놓은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스페인 산티아고 편>으로 지난 두 해 여성 여행자들을 산티아고 가는 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열병처럼 내몰았던 이다.

느리게 걷기가 시대정신이 된 요즘, 도보여행이라는 새로운 여행의 트렌드를 만들어낸 이 여행가는 중남미 여행을 위해 지난 한 해 스페인에서 언어연수를 받고 돌아와 최근 다섯 번째 여행서 <도보여행가 김남희가 반한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을 냈다.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도전하지 못하는 길 위에서의 삶, 궁금한 것이 많다.

 

- 책에 보면 저자 소개에 ‘서른 넷 나이에 세계일주를 위해 전세 보증금을 빼고 적금을 깨 여행을 시작했다’고 나와 있어요. 어쩜 그렇게 용감하세요?

“그런가. 제가 포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만 용감하려고 애를 쓰는 거지,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용감하지 못한 면이 훨씬 많아요. ‘용감하다’에 일부 동의, 일부 반대.”(웃음)

 

- 여행하시기 전엔 어떤 일 하셨어요?

“지루한 일 했어요. 대학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하고 직장생활 2년 하다가 영국(버밍험대학)으로 유학 가서 관광정책학 석사를 했고, 돌아와서 터키대사관에서 6년간 대사님 비서를 했어요.”

 

- 직장인 여행자에서 전업여행가로, 여행에 인생을 걸어보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된 계기는 뭐예요?

“여행에 인생을 걸겠다, 여행을 해서 책을 쓰고 밥을 벌어야지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냥 호기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뭔가 다른 삶은 없을지 궁금했어요. 대학을 졸업하던 1993년, 먹고 살 길이 막막해 떠났던 첫 유럽여행이 엄청난 문화충격으로 제 인생을 바꾸어놓았고, 다행히 제가 다닌 대사관에서 여름휴가를 한 달씩 줘서 해마다 한 나라씩 여행을 다닐 수 있었는데, 여행을 할 때 제 모습이 제일 예뻤어요. 제일 마음에 들었고.

한국에서 사는 제 모습은 되게 각박하고 이기적이고 뭔가에 쫓기고 치이고 욕심 많은 삶이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보는 저는 조금은 넓어지기도 하고 화도 덜 내고 남한테 손을 내밀 줄도 알고 남이 내민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긍정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였어요. 아, 이 일을 할 때 제일 행복하구나, 여행을 할 때 내가 제일 예쁘구나, 그리고 몰랐던 저를 발견해 가는 게 좋았고….

돌아올 때마다 늘 비행기에서 울었거든요, 돌아오기 싫어서. 한번쯤은 다시는 배낭 싸는 게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해보고 싶다, 그런 갈망이 생겼죠. 그런데 직장생활이라는 게 마약 같은 측면이 있잖아요.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그만두기가 정말 어렵고, 그래서 계획보다 3년 정도 시작이 늦어졌어요.”

 

- 그 마약 같은 월급을 포기하고 사표를 내던지는 결정적인 순간의 심경 같은 것, 궁금해요.

“저는 사실 그때 연애도 하고 있었고, 생활은 안정적이었고, 돈을 많이 벌진 못해도 남들이 봤을 때 좋아보이는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객관적인 상황에서 말한다면 별로 부족할 게 없는, 재미있고 행복한 독신생활을 즐기고 있었어요.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서.

제가 한번 결혼을 한 건 아시죠? 1년 8개월 만에 이혼을 했는데 그 이유가 남들이 들으면 굉장히 얼토당토않아요. 좋은 사람 만나서 8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연애하고 결혼을 했는데, 나는 그게 남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제 그냥 남들처럼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고 적금을 부으면서 차를 바꾸고, 아이를 낳고 키워가는 그런 획일적인 삶으로 진입한다는 게 저를 숨막히게 했어요. 참을 수 없게. 그래서 헤어졌어요. 2000년 1월이었죠.

원래는 바로 중국 가서 중국어를 공부한 후에 세계일주를 시작해야지 했는데 그렇게 못했어요. 스스로가 원해서 한 결정이었는데도 한동안 힘들었고, 그래서 좀 침울하게 은둔을 했었죠. 그 다음에는 이런저런 다른 일들, 연애도 하고 그러면서 계속 미뤄졌어요. 내가 누군가를 상처 주면서까지 이루고자 한 꿈인데, 그걸 포기하고 있다는 게 너무 비겁하게 느껴지던 때, 미루고 미루다 도저히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을 때 떠났는데, 그게 2003년이에요.”

중국에서부터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시작한 그는 네팔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했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걸었던 800㎞ 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약 두 달에 걸쳐 걷고 쓴 책이 크게 히트하면서 1년에 7~8개월 정도는 길 위에서 떠도는 삶을, 나머지 4~5개월 정도는 서울에서 책을 쓰며 사는 삶을 살고 있다.

 

- 이제부턴 현실적인 이야기를 좀 물어볼게요. 방 빼고 적금 깨서 여행자금을 마련했다고 하셨는데, 돌아와서 어떡할지 걱정 안됐어요?

“두려움이 있었죠. 갔다 와서 뭘 먹고 살지, 제가 전문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나이는 찰 테고, 대한민국 사회가 여행으로 인한 삶의 공백을 인정해 주는 사회도 아니고. 그런데 저는 그거예요, 비겁하지 말자. 미래가 두렵다고 현재를 유보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지금 내가 간절히 하고 싶은 건 이건데, 이걸 하면 미래가 불안할 수 있으니까 이걸 접고 미래를 위해 다르게 살자’ 이게 저에게는 비겁해 보였어요.

그리고 어떤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이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이 길 속에서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꿈이 생기고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는 믿음.

미래라는 건 지금 열심히 적금을 붓고 보험을 들어서 준비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건 우리가 미래를 너무 물질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고, 전 미래란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충실히 살다 보면 준비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카르페 디엠’, ‘오늘을 살아라’예요.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제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열심히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미래는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게 아닌가, 그걸 여행이 제게 가르쳐줬어요.”

 

- 그럼 떠나실 때까지는 책 계약도 전혀 안 돼 있고, 후일의 계획 없이 그냥 돈 쓰러만 가는 거였겠네요?

“그렇죠.(웃음) 하지만 별로 잃을 게 없는 처지였어요. 제가 방 뺀 돈이 2,000만원이었거든요. 적금은 1,000만원이고. 그 3,000만원이 서른 셋 나이에 제 전재산이었어요. 그러니까 그거 잃어봤자 큰 타격도 아니잖아요. 이 돈 가지고 여행하다가 돈 떨어지면 유스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라도 해서 벌면서 여행하지 뭐,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 주변 반응은요? ‘미쳤다’?

“그게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또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도 참 많았어요. 너라도 원하는 삶을 살아라, 가방 사주고, 신발 사주고, 여비 보태주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 여행작가로 먹고 사는 게 가능해요?

“제가 서울에서만 살았다면 불가능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여행 스타일은 아주 저예산이거든요.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싼 숙소에서 가장 싼 음식을 먹으면서 비행기 거의 안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이니까 돈이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아요. 그래서 할 수 있었어요. 여행이라는 건 돈이 없으면 못해요. 그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돈이 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돈으로 행복한 여행을 살 수 있느냐, 그것도 절대 아니거든요.

저는 여행을 하면서 적은 돈으로 사는 삶도 배우고 있어요. 여기 서울에서 열심히 돈 벌면서 사시는 분들 다 미래가 불안하실 걸요, 그렇죠? 하지만 저는 미래가 덜 불안해요. 여행을 통해서 끊임없이 배우거든요. 돈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도 적은 돈으로도 살 수 있구나, 삶의 방식을 바꾸고,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돈이 중요하지만 결정적이진 않다는 걸 알게 되더라구요.

여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예요. 돈이 없으면 여행을 못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여행할 수 있는 방법도 정말 많아요. 저 인도랑 네팔 1년 동안 여행하면서 450만원 썼어요. 그런데 저보다 더 적게 쓰는 친구들도 있어요. 20대 초반 아이들은 300만원으로 1년을 살아요. 그런데 저는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걔네들이 제일 싼 방 쓸 때 그래도 화장실은 달린 방을 쓰고 그랬어요.”

 

- 지금까지 얼마나 벌었어요?

“제 책이 모두 다 합쳐서 8만부쯤 나갔으니까 4년간 1억원쯤 번 것 같아요.”

 

- 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이 있잖아요. 뭐 물어볼지 아시죠?

“하하하하하. 제 고민입니다.”

 

- 여행도 일이 되면 스트레스, 있죠?

“제가 얼마 전에 네팔을 갔다 왔어요. 가수 이문세씨와 같이 하는 산악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네팔에 학교를 지었거든요. 봉사활동을 한후 며칠간 트레킹을 하는데, 그 여행이 너무 좋았어요. 아무것도 안 쓰고, 아무것도 안 찍고, 오직 움직이고 걸으면 됐거든요.

이젠 여행을 하다 좋은 게 나오면 얼른 사진을 찍어서 남겨야지, 그런 생각부터 들어요. 사실 전 여행작가로서는 굉장히 게으른 여행작가예요. 그림이 되는 풍경이 있으면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전 거기 들어가서 노는 게 더 좋은 사람이거든요. 책을 내면 출판사에서 늘 물어요. 어떤 이야기가 나오면 ‘이 분 사진 없어요?’. 전 없어요, 늘.

쓰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여행의 즐거움을 넘어선다면 그땐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일에 대한 부담보다는 여행이 훨씬 즐겁기 때문에 계속 하는 거고, 아직은 방 뺀 돈 2,000만원 그대로 있으니까 정 안되면 그 돈으로 옛날처럼 여행하면서 놀면 되지, 여행자로 돌아갈 수 있어 하는 자신감이 아직은 있어요.”

그는 도보여행가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줄곧 걷는 것, 그것이 그의 여행의 원칙이다. 속도에 맞서는 소요의 정신이 다시 우리를 사로잡는 이때, 도보여행가라는 그의 타이틀은 아주 전략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출판사에서 붙여준 이름일 뿐이라며 그저 웃었다.

 

- 걷기의 즐거움이란 게 뭐예요?

“만남인 것 같아요. 차를 타도, 자전거를 타도 누군가를 만나기는 하죠. 하지만 만남의 속과 깊이, 횟수 모든 면에서 걷는 여행과는 다른 것 같아요. 천천히 혼자 걸어서 여행을 하다 보면 일단 자기 자신과 만나죠. 바빠서 들여다볼 틈이 없었던 나, 내 문제들, 내 주변을 둘러싼 일상, 사람들…. 혼자 터벅터벅 걷다 보면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거든요.

그 수많은 잡념과 상념들 속으로 자기를 그냥 던져 놓고 계속 들여다 보는 거죠. 그렇게 걷다 보면 아무런 상념이 없는 그런 순간이 찾아와요. 내 의지가 내 몸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몸이 나를 끌고 가는 그런 순간이 오거든요. 머리 속이 다 비워지는 아주 짧은 순간인데, 그 순간의 공백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자연을 만나죠, 차 타고 명승지에 내려서 사진 몇 방 찍고 오는 여행에서는 만날 수 없는. 걸으면서 계속 길가의 꽃도 들여다보게 되고, 나무의 이름도 불러보게 되고, 거리에 놓인 의자에 주저앉아 잠시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게 되죠, 타인을. 혼자서 하염없이 걷다 보면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고. 그렇게 다양한 만남이 주는 기회들, 그게 좋죠. 걸어봐야 알아요.”

 

- 어리석은 질문인 줄 알면서도 꼭들 물어보는 질문,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저는 여행하는 모든 나라와 사랑에 빠져요. 그래서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보면 지금 여행하고 있는 나라라고 말해요.”

 

- 막상 가보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곳도 있잖아요.

“전 한 곳도 없었어요. 그럴 수 있었던 게 사람에 대해서는 기대가 커서 실망을 자초하는 편인데 여행지에 대해서만큼은 기대를 별로 안 품어요. 어디가 너무너무 좋다더라 하면 가보긴 하지만, 분명히 나쁜 점도 있겠지 생각하고, 어디 갔더니 진짜 볼 것 없다더라 누가 얘기해도 대신에 다른 뭔가 좋은 점이 있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하는 편이거든요.”

 

-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들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자선, 기부 이런 쪽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수입의 10%를 기부하고 계신데.

“여행은 제게 긍정의 힘을 가르쳐줬어요. 제 자신을 긍정하는 법, 타인을 긍정하는 법, 그리고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 현재를 긍정하는 법을요. 제가 좋아하는 나라들이 흔히 말하는 저개발국가들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보게 되죠.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못 봤을 것들, 삶이 물 긷는 일에서 물 긷는 일로 끝나는 여자들을 보게 되고,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흙바닥에서 뒹굴고 놀다가 조금만 자라면 노동을 해서 밥을 벌어야 하는 아이들을 보고…. 그럼 고민할 수밖에 없죠. 저는 한비야씨가 세계일주를 마치고 긴급구호 활동가로 나서게 된 게 참 자연스런 귀결이라고 봐요.

하지만 저는 그런 삶을 살 용기와 자신은 없고,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열 개를 가졌으면 한 개 정도는 내놓을 수 있어, 그게 제가 여행을 통해 고민한 거였어요. 지금 여기까지가 제가 기쁘게 할 수 있는 수준이에요. 여기서 더 내놓으라고 하면 그건 못할 것 같아요.”(웃음)

김남희식 여행기의 특징이라면 소박한 내면의 표출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책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그가 사랑해,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면 함께 볼 수 없는 슬픔에 눈물을 짓곤 하는 런던의 그 남자를 궁금해한다.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깊고도 방대한 인연도 놀랍고 부럽다.

 

- 여행작가들도 많아지고, 여행책도 쏟아지는데, 그 가운데 김남희의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뭘까요.

“제 책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제 책에서 뭔가 굉장한 걸 얻는다고는 생각 안 해요. 단지 그분들은 이웃집 언니 같은 한 여자가 돌아다니면서 겪는 성장통, 끊임없이 뭔가 자기를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려고 노력하는 한 여자의 일기 같은 책을 그냥 편하게 읽어 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약간의 용기를 얻고. 이렇게 별 거 없어보이는 여자도 이런 여행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얘기 많이 하시거든요. 한비야씨 책을 읽으면 이 여행은 내가 절대 못하는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당신 책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제 책이 주는 가치는 그거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도시의 여자들에게 꿈이 있다면 자신을 던져볼 수 있다고, 한번쯤은 해볼 수 있다고 속삭여주는 것.”

 

- 김남희씨 책을 보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초대하고 돌봐주는 수많은 길 위의 사람들이 나와요. 그 사람들을 매료시킨 매력이 뭐예요?

“제 얼굴이 좀 없어 보이고 절박해 보이나 봐요.(웃음) 그래서 뭔가 도와줘야겠다고 생각이 드는 얼굴. 어떤 분은 저더러 ‘참 여행하기 좋은, 경계가 없는 얼굴’이라고도 하더라구요. 근데 얼굴도 변하는 것 같아요. 서울 살 때보다 많이 편해지고 부드러워졌어요. 많이들 도와주고, 저도 남이 내민 손을 잡을 줄 아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아요.”

 

- 길 위에서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어요?

“있죠. 그래서 사랑에 빠지게 될까봐 얼마나 경계하는지 몰라요. 너무 힘들거든요. 여행지에서 만나 며칠간 함께 걷던 여자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그렇게 힘든데, 사랑에 빠지면 여행이 안 풀려요. 주저앉을까봐 두려워서 최대한 경계해요.”

 

- 런던의 그 남자도 그렇게 만났나요?

(웃으며) “여행지에서 만나 며칠간 함께 여행했던 사람인데, 뒤늦게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저 혼자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은 채 친구로만 지내고 있죠.”

 

- 오래 떠돌다 보면 내가 과연 정착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 안 생겨요?

“저 되게 정착하고 싶어요. 평생을 떠돌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없고, 밖에서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세계일주 끝나면 이 땅에 정착할 거예요. 전 우리나라 좋아해요. 저한테 가장 익숙한 곳이니까. 하지만 확실한 건 그게 서울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 거라는 것. 여행을 통해서 배운 것을 제 삶에 응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거죠.

경주쯤에 외국인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싶어요. 외국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하고 싶고, 제도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위한 여행학교 하고 싶어요.”

 

- 휴가철도 다가오는데, 김남희씨 책이나 인터뷰를 보고 ‘에라, 나도 사표 쓰고 떠나보자’ 사고 치는 직장인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분들에게 조언과 제안을 해준다면요?

“사고 많이 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은데요.(웃음) 사고 많이 치고, 좌절 많이 하고, 무르팍 많이 깨져봐야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정말 원하는 일이 있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고 쳐보세요. 인간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거니까 실패하더라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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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나이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