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생활자 유성용 "여행이란, 이 생서 다른 생을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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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여행을 담아낸 화면 속, 바자르 유목민들과 함께 가지런한 손가락으로 양탄자를 짜고 영화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길 3부작 배경이 된 포시테 마을의 순박한 주민과 진심 어린 눈빛을 교환하며 지진으로 죽은 자들이 묻힌 먼 산을 향해 ‘샬롬’ 이란 안식의 말을 외치던 그가 눈길을 끌었다. 이들의 삶이 마치 글자 하나 하나에 새겨진 듯 정성스럽게 읽어 내려가는 내레이션까지도. 어떤 사람이길래, 이리도 아름다운 영혼을 찾아가는 여정을 꾸렸을까. 유성용이란 사람이 문득 궁금해졌다. 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를 하다 훌쩍 지리산으로 떠나와 3년여를 보내고, ‘세상에 뺨 맞은 심정’으로 티베트, 네팔, 파키스탄, 스리랑카, 인도 등지로 1년 반을 여행하고 돌아온 그는 생활 밖으로 나온 각각의 경험을 ‘아무것도 아닌 것들의 사랑’과 ‘여행생활자’라는 책으로 써냈었다. 지난해 6월 펴낸 ‘여행생활자’는 일 년도 못되어 6쇄를 찍어냈을 정도로 넘쳐나는 여행기 중에서도 ‘잘 나가던’ 책이었지만 그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는 세계테마기행을 통해서다. 지난 5월과 8월 각각 멕시코와 이란을 여행하고 돌아온 그의 여행기가 방송되자, 시청자 게시판은 방송후기와 그에 대한 궁금증으로 떠들썩했고 그의 홈페이지는 트래픽 초과로 많은 이들이 문만 두드리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PD랑 단둘이 떠난 여행이었는데, 굉장히 많이 싸웠어요. 자신을 바꾼다는 의지 없이는 여행에 의미가 없다고 강하게 말했더니, PD가 울면서 정글로 도망가버린 적도 있었죠.” 두 편의 방송을 함께 촬영한 PD와의 에피소드로 그와의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따뜻한 사람 대회가 있다면 1등을 할 자신이 있다’고 웃으며 말하는 그는 따뜻함과 동시에 냉철한 사람이었다. 세상 저 편에서 냉소를 날리고 있는 듯해도 세상을 다 끌어안을 듯 넉넉하다고 해야 할까. ‘여행생활자’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경계처럼 유성용도 그처럼 아이러니한 공존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행과 생활,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둘이 결합해 낭만과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읽다 보면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죠. 냉소와 허영이라는 현대사회를 지배하는 두 개의 키워드 사이에서의 어정쩡한 위치가 묘한 감정을 주는 것 같아요.” 두 번째 책 ‘여행생활자’가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이유에 대한 그 나름의 해석이다. 하지만 그는 많은 이들이 여행 위에 덧칠하고자 하는 낭만의 색을 철저히 차단한다. 한 발 나아가 여행을 하지 말라고, 꿈꾸지 말라고 말한다. ‘여행생활자’의 책장 속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여행자들은 생활에 지쳐 여행을 떠나지만 그것이 며칠짜리 레저가 아니라면, 결국 여행이란 삶을 등지고 죽음의 냄새를 맡으러 가는 머나먼 길이다.’ (96p) ‘생활에 찌든 자들은 산정으로 올라가야 하고 죽음에 찌든 자들은 마을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분명 그 길은 넓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 길을 막아두고 자동펌프처럼 생활의 의욕만을 자꾸 밀어붙이는 사회는 참으로 무서운 사회일 것이다. 그대가 생활에 붙박여 있다면 마음속에나마 저만의 산정 하나쯤 마련해두길 바란다. 그곳에서 언제라도 세상 끝으로 다가가 다시금 길을 잃을 수 있도록.’ (123p) ‘그는 세상 무엇에도 기대지 않아 보였지만 감히 그 누가 아무 것에도 기대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두려움이 밀릴 때마다 그는 허공에 자신을 기댔을 거다.’ (267p) “성실하게 관계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게 중요하지 친구고, 사랑이고의 관념적인 개념은 의미가 없어요. 거울 방에 갇힌 채 자기만의 이유로 소비하고 해석하는 것, 이런 식이라면 사랑의 고백마저도 폭력이 되는 거지요.” 이 같은 그의 생각은 핑크 빛으로 관계를 채색하는 세상의 잣대와는 ‘불화’한다. 세상을 바로 보는 것이 오히려 고통인 세상, 그의 여행은 ‘불화’로부터 시작됐다. 최근 8개월간 계속되었던 다방기행도 그 궤를 같이 한다. “스쿠터를 타고 다방기행을 하면서 지방 곳곳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순천이 굉장히 낙후되어 있는데, 양복점이란 간판이 있어서 들어가보면 화분을 팔고 소금이라고 써 있는 곳엔 연탄을 팔고 있어요. 하얀 소금 사러 갔다가 검은 연탄을 사고, 희다방이란 곳에 순희를 찾으러 갔다가 영희 만나 애 둘 낳고 이혼하는, 그런 게 세상이 아닌가 싶어요.” 한번쯤 세상으로부터 따귀를 맞아본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 괜찮다’라는 일시적인 진정제가 아니라, 애매한 세상에 대한 정확한 시각과 누군가의 어깨가 아닌 ‘허공에 기대는 기술’을 깨우쳐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여행과 생활이 구운몽의 이야기처럼 서로 ‘몽중몽’의 느낌을 가지고 있어 ‘여행생활자’로 자신을 수식하는 그는 지난 주 세 번째 책 ‘생활여행자’를 펴냈다. 2003년 봄부터 2008년도 9월까지 여행을 전후로, 서울에서 보낸 시간들을 담았다. “집 앞 산책이 먼 히말라야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나 라는 존재를 생활 속에서 회의해보는 시간이죠. 인생이 경험의 총체라고 한다면, 그것을 극진히 체험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하여 ‘생활여행자’의 서문엔 이런 글이 적혔나 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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