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노,병,죽음

내 보따리는...

언러브드 2012. 10. 23. 00:29

 

 플라톤에 관한 몇 가지 고사古事가 있다. 그것들은 예컨대 세상에 흔히 있는 옛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다.

 플라톤의 것에는 무심코 한 말이 있어서 그 말 때문에 옛 이야기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얼려 퍼져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구석구석을

 갑자기 환하게 비춘다. 이를테면 기사騎士 엘의 이야기가 그렇다.

 엘은 전투에서 죽었는데, 죽음의 심판이 잘 못되었다는 것이 인정되자 지옥에서 돌아왔다.

 그리하여 지옥에서 보고 온 것을 이야기했다.

 

지옥에서의 무서운 시련은 이런 것이었다. 영혼 또는 망령亡靈,(그 밖에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은 대평원으로 끌려간다.

그의 눈앞에는 많은 주머니가 던져진다. 그 속에는 저마다 선택해야 할 운명이 들어 있다.

영혼들은 아직도 그들의 과거의 생애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의 욕망이나 회한에 따라서 택한다. 무엇보다도 돈을 탐내던 사람은 돈이 꽉 찬 운명을 택한다. 돈을 많이 가졌던 사람들은 더욱 더 많은 돈을 손에 넣고자 노력한다.

도락자道樂者들은 쾌락이 가득 차 있는 주머니를 찾는다. 야심가들은 왕王의 운명을 택한다.

이윽고 모두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하여 새로운 운명을 어깨에 메고 떠난다.

 

그리고 레테, 즉 망각忘却의 강물을 마시고 저마다의 선택에 따라서 살기 위해 다시 인간이 사는 지상을 향해 출발한다.

참으로 기묘한 시련이고 기괴한 형벌이다. 더구나 그 무서움에는 얼핏 보는 이상의 것이 있다.

행복과 불행의 참다운 원인에 관해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란 없는 것이다.

 

참다운 원인에 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원천源泉, 즉, 이성을 꼼짝 못하게 하는 포학한 욕망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들은 부富를 경계한다.

 

부를 손에 넣으면 추종追從에 대해 민감해지고, 불행한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쾌락을 경계한다. 쾌락은 지성의 빛을 가리고 마침내는 이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현자賢者들은 보기에 아름다운 주머니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거꾸로 엎어 본다.

 

자기의 마음의 평형平衡을 잃지 않으리라고 여러 모로 애를 써서 손에 넣고 몸에 익힌 약간의 올바른 감각을

화려한 운명 속에서 위험 앞에 내놓지 않으리라고 마음을 쓰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도 바라지 않는 수수한 운명을 짊어지고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밖의 사람들, 일생동안 자기의 욕망을 뒤쫓던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좋아 보이는 것에 혹하여서

코앞의 일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 맹목盲目과 무지와 허언虛言과 부정을 택하는 것 외에 무엇을 택하는 것을 바라겠는가?

이리하여 그들은 어떤 재판관이 벌을 내리기보다 훨씬 더 가혹하게 자기가 자기를 벌하게 된다.

그 백만장자는 지금쯤 그 대평원에 있을 것이다. 그는 무엇을 하고자 생각하고 있을까?

 

 

그러나 비유는 그만두자. 플라톤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언제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

나에게는 죽음 뒤에 오는 새로운 생활의 경험이 없다. 그러니까 사후의 생활을 믿지 않는다고 말해봤자 별 수도 없다.

우리들은 그것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나는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들의 스스로의 선택에 의하여 또한 스스로 세우고 있는 행동의 원칙에 의하여 처벌되는 내세의 생활이란

우리들이 끊임없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미래未來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들이 펴는 보따리는 우리들의 고른 보따리임이 틀림없는 것이다.’ 라고,

 

 

우리들이 신들이나 운명을 비난하면서도 <망각>의 강에서 물을 먹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는 것 또한 진실이다.

야심을 택한 자는 저급低級한 추종, 선망, 부정 들을 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들 또한 자신이 택한 보따리 속에 있었던 것이다.“

 

 알랭의 <행복론>에서..

'생,노,병,죽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년의 우울...  (0) 2012.10.27
황혼길  (0) 2012.10.24
길이 사람이고, 사람이 길.  (0) 2012.10.23
바람 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0) 2012.10.05
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 식구  (0) 2012.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