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지분 깬 금호 박찬구 회장의 속내는
2009년 07월 06일 17시 01분
박찬구 금호아시아나그룹 석유화학 부문 회장의 계열사 지분매입 행보에 대한 재계의 반응이 뜨겁다.
전통적인 형제경영의 틀 속에‘동일지분’을 유지해 오던 금호가 2·3세들의 지분구조에 ‘균형’이 깨진 첫 사건이어서 계열분리는 물론, 형제분쟁의 ‘불씨’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 만만치 않다.
지난달 29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박찬구 회장은 최근 금호산업 주식 36만1504주(0.59%)를 매도하고 금호석유화학(이하 금호석화) 주식 30만5640주(1.08%)를 매입했다.
박찬구 회장의 장남 준경(금호타이어 부장) 씨도 금호석화 주식 16만2880주(0.57%)를 사들였다.
앞서 지난달 22일에도 박 회장은 금호산업 보유주식 106만주 가운데 36만주를 팔았고 금호석화 주식은 20만주를 매입해 보유주식을 155만주로 늘렸다.
이로써 박 회장 부자의 금호석화 지분율은 기존10.01%에서 6월 말 기준으로 15.81%까지 늘어났다.
깨어진 ‘황금분할’…계열분리 신호탄인가
박찬구 회장의 이 같은 지분 변동이 눈길을 끄는 것은 금호석화가 차지하는 그룹 내 위상과 형제 간 균등지분 전통이 깨졌다는 점 때문이다.
우선 지분 변동을 놓고 업계에서는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화를 중심으로 계열 분리 수순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박찬구 회장이 금호산업보다는 금호석화를 ‘주력회사’로 키우는 수순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호석화는 금호산업과 함께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주요 계열사로 현재 금호타이어(47%), 금호폴리켐(50%), 금호미쓰이화학(50%), 금호피앤비화학(50%) 등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금호석화는 금호산업 지분을 19.03% 보유해 금호석화만 지배하면 전체 그룹을 지배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실질적인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금호산업이 대우건설, 대한통운 등 매머드급 인수·합병(M&A)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 유동성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데다 특히 대우건설의 지분 18.6%를 보유하고 있어 향후 매각에 따르는 리스크가 높다는 점에서 박찬구 회장이 금호석화 쪽으로 ‘중심’을 이동하면서 서서히 계열분리를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금호그룹 관계자는 “지분변동은 소폭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계열분리라는 데 의미를 두는 것은 무리”라면서 “혹여 계열분리를 한다고 해도 (박찬구 부자 외) 다른 가구에서도 여전히 지분율 10%씩은 갖고 있어 동의를 구해야 하고, 동의가 이뤄져도 그 이후 지분 정리 과정에서 비용과 절차 문제가 까다롭기 때문에 계열분리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한편 일각에서는 박 회장의 행보가 ‘그룹 경영권 안정화’라는 그룹 공동의 목적을 위한 조치였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금호그룹 측도 “박찬구 회장이 화학 부분을 오랫동안 책임져 왔으니 ‘책임경영’ 차원에서 지분 변동이 이뤄진 것 같다”는 입장이다.
박찬구 회장 부자의 금호석화 지분매입과 관련해 또 다른 ‘후폭풍’은 형제경영의 상징이었던 황금지분 비율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찬구 회장은 형이자 현재 그룹 회장인 박삼구 회장과 동일하게 134만6512주(5.3%)를, 아들 준경 씨도 박삼구 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와 똑같은 119만8050주(4.71%)를 보유하고 있었다.
형제경영 ‘균열’…경영권 이양 위한 사전작업 시각도
가구별로 종합할 때 고 박성용 회장의 장남 박재영 씨(4.65%)를 제외하고 고 박정구 회장의 장남 박철완 씨와 박삼구 회장 부자, 박찬구 회장 부자들이 나란히 금호석화 지분 10.01%씩을 보유하며‘힘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 부자가 이번에 장내에서 주식을 사들이면서 그들만 금호석화 지분이 15.81%까지 늘어나 공교롭게도 경영에 참여한 4형제 일가 가운데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
박삼구 회장 부자(10.01%)와의 격차는 5.8%p. 단순 수치만 놓고 볼 때 다른 형제에 비해 한발짝 앞서게 된 것은 분명하다.
이 같은 정황으로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오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형제분쟁’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금호그룹은 고 박인천 창업주에 이은 2세 경영이 시작되면서 형이 동생에게 경영권을 이양했다.
특히 1대 창업주 박인천 회장 이후 2대인 고 박성용 회장부터 4대인 현 박삼구 회장에 이르기까지 2번에 걸쳐 만 65세 때 경영권 승계가 이뤄지다 보니‘65세 룰(65세에 동생에게 경영권을 물려준다)’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현재 만 64세인 박삼구 회장이 내년이면 65세가 되는 나이여서 2010년에 금호그룹의 경영권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는 얘기가 지금부터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박삼구 회장이 내년에 동생인 박찬구 회장에게도 과연 경영권을 물려주겠느냐에 대해 재계에서는 “당장 내년은 아니지 않겠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상황. 따라서 박찬구 회장의 이번 지분변동이 결국에는 ‘그룹 경영권을 박삼구 회장으로부터 넘겨받기 위한 압박용이었을 것’이라는 견해마저 대두되고 있다.
특히 최근 대우건설 재매각으로 박삼구 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도 이와 연관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로서는 박삼구 회장에게 충분히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안”이라며 “박삼구 회장의 경영실패로 박찬구 회장에게 힘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지분 변동으로 경영권 이양 문제를 가시화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간 ‘불협화음’이 존재한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는 상황이어서 이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금호그룹 측은 “박삼구 회장과 박찬구 회장 간 관계가 껄끄럽다는 것은 사실무근인 루머”라며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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