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소설 속 ‘큰돈’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언러브드 2020. 1. 2. 11:47


탐정의 비용은 갑작스러운 증가가 어렵지만, 범죄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대서양 횡단 비행으로 유명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이 1932년 유괴되었을 때, 몸값으로 5만 달러를 지급했으나

30년 후 소설에서 몸값은 열 배가 된다.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돈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죽은 사람이 남긴 유산, 숨겨진 보물, 은행 강도가 훔친 액수, 유괴범이 요구하는 몸값 등 다양하다.

일부러 세어 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다른 분야 소설보다 많이 언급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나라 작품이라면 좀 오래되더라도 웬만큼 머릿속으로 시세를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좀 오래된, 즉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 정도까지의 외국 작품에서는 시대뿐만 아니라

화폐단위도 달라 전문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실감하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셜록 홈즈가 처음 등장하는 <주홍색 연구>의 도입부를 보면, 군의관으로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의병 제대자가 되어 1881년 영국으로 돌아온 왓슨의 연금은 하루에 11실링6펜스였다고 한다.



200만 달러 보물 찾는 보수가 5000달러 


‘방탕하게 돈을 쓸 수 있었다’고 하니 제법 많은 액수임을 짐작할 뿐, 대략 130여년 전의 일이라 구체적으로는 어느 정도인지 알기가 어렵다. 특히 영국의 화폐단위는 1파운드=20실링=240펜스라는, 십진법도 아닌 매우 헷갈리는 방식이어서(계산상 혼란이 많아 1971년 2월부터 1파운드=100펜스로 통일) 따져보자면 더욱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다행히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과거 화폐가치를 현재 가치로 계산해 주는 사이트(http://measuringworth.com)가 있어 재미삼아 한 번쯤 계산을 해 보았다. 왓슨의 하루 수입은 2015년의 구매력 기준으로 약 51파운드(약 8만9000원)에 해당하니 매월 대략 270만원 남짓의 연금을 받는 셈이다. 어쨌든 호텔에 머무르며 생활하던 왓슨은 연금을 이대로 막 쓰다가는 앞으로 힘들겠다고 자각한 뒤, 좀 더 저렴한 거처를 찾아 나선 끝에 셜록 홈즈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작품에서 홈즈는 이른바 ‘베이커 스트리트 비정규대’로 불리는 부랑자 아이들에게 정보 수집을 부탁하고 각각 1실링씩을 나눠줬다. 위와 같은 기준으로 계산하면 약 4.5파운드(약 8000원)에 해당한다.


홈즈 이야기를 좀 더 살펴보면,

<네 사람의 서명>에서 여러 사람이 노리는 보물의 가치가 50만 파운드(1888년)라고 하는데,

현재 기준으로 하면 약 4974만 파운드(약 873억원)에 해당한다.

<빨간 머리 연맹>에서 윌슨은 주급 4파운드(현재 기준 약 400파운드, 약 70만원)라는 짭짤한 보수 때문에

괴상한 직업을 선택한다.

<보헤미아 왕국 스캔들>에서 홈즈에게 문제 해결을 부탁한 보헤미아 왕이 품에서 꺼내놓은 착수금은

1000파운드로, 약 9만9000 파운드(1억7000만원)에 해당한다.

홈즈는 <프라이어리 스쿨>에서 유괴사건 해결 사례비로 6000파운드라는 거액(현재 기준 약 58만 파운드, 약 10억원)을

받기도 했으니, 금전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을 좀 더 현대로 앞당기고 유럽에서 북아메리카 대륙의 상황을 살펴보자.

미국 하드보일드 추리소설의 길을 마련한 대실 해밋의 <몰타의 매>(1929)에 등장하는 사립탐정 샘 스페이드는

검은 새 조각상을 찾아주면 500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80여년 전의 달러 시세 역시 지금과 달라서 약 6만9000 달러(7800만원)에 해당한다.

나중에 두 배로 주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200만 달러(약 2700만 달러, 약 314억원)의 가치가 있다는 황금과 보석으로 만들어진 16세기 보물을 찾는 비용치고는 많이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등장하는 탐정의 일당도 계속 올라 


스페이드의 후배 격인 사립탐정 필립 말로(작가 레이먼드 챈들러)는

<빅 슬립>(1939)에서 일당으로 25달러(약 426달러, 48만원)와 소요경비를 청구한다. 사립탐정의 일당은 차츰 상승한다.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립탐정 루 아처는 1950년대에 일당 50달러(약 492달러, 56만원)였다가

1960년대에는 일당 100달러(약 773달러, 88만원)까지 올라간다.

스페이드, 말로, 아처는 개인 탐정사무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라 어떤 면에서는 좀 소박한 형태다.

21세기의 미국 사립탐정 사무소의 비용을 살펴보면 사건 종류, 장소, 탐정의 숙련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시간당(일당이 아님!) 75달러(8만5000원)에서 500달러(56만원)까지 달라진다.

요즘 요금과 비교해 보면, 필립 말로의 의뢰인들은 유능한 명탐정을 매우 헐값에 고용한 셈이다.


소설 속 탐정의 비용은 갑작스러운 증가가 어렵지만, 범죄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대서양 횡단 비행으로 유명한 찰스 린드버그의 아들이 1932년 유괴되었을 때, 몸값으로 5만 달러(약 88만 달러, 9억8000만원)를 지급했으나 아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30년 후 소설에서 몸값은 열 배가 된다. 에드 맥베인의 <킹의 몸값>(1959)에서 유괴범이 50만 달러(약 400만 달러, 46억원)를 요구한다. 이 소설을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화한 <천국과 지옥>(1963)에서는 3000만 엔(약 1억2000만 엔, 11억원)이다.

4년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차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약 20년 후 덴도 신의 <대유괴>에서 어리버리한 유괴범들에게 80대의 억만장자 할머니를 납치한 어설픈 3인조 유괴범들은 당초 5000만 엔의 몸값을 요구할 생각이었으나 유괴 당사자인 할머니는 분노하며 오히려 100억 엔으로 수직 상승시킨다. 현금의 무게만도 1.3톤이나 되는, 당시로서는 역대 최고의 몸값이 아닐까 생각된다. 약 40년 전이 배경이라 일본은행의 물가지수로 계산할 때 약 1.45배 오른 145억 엔(1370억원)이지만, 여전히 엄청난 거액이다. 

시대를 약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일본 추리소설의 선구자 에도가와 란포의 데뷔작 <2전짜리 동전>(1923)에서는 제목 그대로 2전짜리 동전 안에서 발견한 암호를 푸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암호를 풀면 5만 엔이라는 거액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걸려 있다. 일본 쪽은 당시 가치를 계산하는 사이트를 찾을 수 없었고, 소비자 물가지수로 판단한 자료에 따르면 1923년의 1엔은 현재의 4000엔에 해당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5만 엔은 약 2억 엔(18억원)으로, 변변한 재산이 없던 등장인물들에게는 엄청나게 커다란 액수일 것이다. 그런데 이 5만 엔이라는 거금은 5000명에 가까운 직공의 급료라고 하는데, 월급이 10엔(4만엔, 38만원) 정도라면 아무리 1920년대라지만 너무 적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경로로 계산을 해 보니 당시의 물가를 그럭저럭 짐작할 만한데,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르다 보니 과거의 거액이 크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대유괴>의 100억 엔은 1970년대에 상상도 못할 거액이었지만, 요즘은 100만 달러(약 11억원)도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악당들이 노리는 액수도 점점 올라갈 것임에 틀림없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