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노,병,죽음

고독사

언러브드 2014. 5. 29. 09:59

 

 

‘生必死’ 생필사란, 살아있는 존재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는 것을 말함이 아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번은 죽음을 맞아야 하는 필연적인 존재이다.

어떤 죽음을 사람들은 원할까?

 

수, 부 강령, 유호덕, 고종명을 尙書 홍범에서 이를 오복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특히 考終命이란 하늘이 부여한 천명을 다 살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큰 축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죽음을 원한다고 다 되는 것 아니다.

 

죽음이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슬프고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충신 성삼문은

“북을 쳐 사람의 목숨을 재촉하는데 머리를 돌려 해를 보니 해는 이미 기울었더라 황천 가는 길엔, 주막이 없다하는데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쉬여 갈까!”

애끊는 비가를 남겨 충신의 한 많은 죽음에 후세를 더욱 비통하게 했다.​

 

고종명을 누리지 못한 죽음, 충신의 비통함을 생각해 보면서 온전한 수를 누리지 못하고 홀로 쓸쓸히 마지막을 한다는 고독사는 ]\울어주며 아쉬워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련한 죽음이다.

 

고독사 무연사 등은 외로운 죽임이다.

특히 일인 나 홀로 가구가 지난 20년 동안 3배로 급증, 통계청에 의하면 2012 기준 일인 가구 추정치는 453만 9000가구로 전체 비율이 25.3%에 이르고 2000년 222만 4000가구에 비해 두 배로 급증했다고 한다.<출처 통계청>​

 

고독사, 여러 가지의 이유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이혼으로 가정의 해체와 질병, 그리고 실패 등 불행적인 요건이 상승 작용을 한 것이다.

고독사는 무관심에서 버려지고 또한 본인 자신은 사회성을 상실했기에 운둔생활로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다가

자살이나 아니면, 질병으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62세의 여인은 옷을 12벌이나 껴입고 백골이 되어 5년 만에 불행한 그의 죽음이 밝혀졌으니

우리사회의 무관심이 극에 달했음을 표명한 것이다.

가족이란 안전망이 뚫어지고 해체가 되어 어느 구석에 내 몰린 우리의 이웃들이 있다는 것은,

내 형제 내가족의 일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물론 노령자들에 대해선 비상연락망이 잘 되어 있고 또 도우미들이 정한 시간에 방문하여 벗이 되어 주며 청소와 세탁 등 수발하는 이런 제도는 참으로 좋은 정책이다. 그러나 이 제도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대개 고독사라고 한다면 노령층을 생각할 수가 있지만, 연령별로 30대 6.2% 40대17.0% 50대 29.0% 70대 9.1% 라는 통계를 보면

50대가 가장 많았고 40대와 30대도 상당했으며 대부분 도시에서 발생하였고 여자보다 남자가 73%에 해당하니 막대한 노동력의 상실은 국가경쟁력의 낭비를 의미하고 있다.

 

지난 2013년도 1717건의 고독사가 발생하였으며 전국지방자치단체의 무연고 사망자 등을 보면 의심사례까지 일만 1002명이라고 한다.<자료출처 KBS파노라마 2014.5.22>​

 

사회보장제도도 더욱 강화해야 하겠지만 예산과 복지인원 등을 감안하면 갈수록 태산이다.

우리선조들의 지혜로움은 十匙一飯 ‘십시일반’이다. 즉 열사람이 자기 밥그릇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서 굶주린 사람의 그릇을 채워주는 그런 미덕을 베풀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사회의 병폐는 양극화 현상이라고 하면 부인할 수가 있을까? 내가 기쁘고 행복하면 반드시 슬프고 불행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요지경 같은 세상의 일면을 보면서 자신들의 왕국을 만들어 놓고 기고만장하는 것, 참으로 혼란스럽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고 우리주위에서 쓸쓸히 무관심 속에서 최후를 맞는 불행한 사람들이 없는 그런 세상을 위해

불의 불법하게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자들을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 근절해야 하고 즐겁고 행복한 사람들은

십시일반의 지혜로운 선조들의 교훈을 배워서 실천하면 우는 자들의 눈물을 씻어주며 쓰러져 포기하는 자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검경일보 객원 칼럼니스트 이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