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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결혼에 대해

언러브드 2013. 6. 20. 11:28

 

삶과 결혼에 대한 명상,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기 때문에 하고 후회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다.’ 사랑과 결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철학자인 시몬느 드 보봐르가 “여자들에 의하여, 여자 세계의 내부에 키워진 운명, 더욱 실제적으로는 남자에게 예속되는 관습, 결혼이 그것이다.” 라고 갈파했던 결혼이, 그 당시와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예나 지금이나 찾아보기가 힘들다.

 

외롭고 고독하기는 하지만 자유롭게 스스로를 조율하면서 살다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순간, 모든 것에서부터의 자유가 그 이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실망이 분노로, 분노가 슬픔으로 바뀌는 수많은 변화를 통하여 터득하는 것, 그것이 스피노자가 줄곧 그 자신에게 설파했던 세 마디 말이다.

 

“울지 마라. 화내지 마라. 체념하라.”

 

거기에다 결혼의 씨앗이라는 아이들, 물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그 어떤 보석보다 소중한 자식들이 태어나면서 상황은 더 달라진다.

혹자는 ‘해약도 할 수 없는 가장 악성 보험’이라는 아이들까지 제 목소리를 내면서, 더 복잡해진다.

그러한 결혼의 어려움을 일찌감치 간파했던 철학자들은 대부분 독신의 삶을 영위하다가 세상을 하직했다,

스피노자, 쇼펜하우어, 키에르케고르, 니체, 프란츠 카프카가 대표적인 독신주의자들이었다.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링컨이나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대표적인 악처를 만나서 세상이 고행苦行이라는 것을 절절히 실감하고 살았다.

 

루 살로메가 릴케에게 기울면서 결혼을 포기했던 니체는 결혼을 여러 가지 해야 할 것 중에서 ‘서로가 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관계인가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긴 대화인 결혼”

결혼을 동의함에 있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봐야 할 것이다. 그대는 이 여자와 말년에 이르도록 즐거이 지낼 수

있다고 있는가? 결혼에 있어 다른 모든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지만,

그 대부분의 교제 시간은 대화로 보내야 하는 것이다.“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프란츠 카프카 역시 결혼을 자유와 비 자유의 관점에서 보았다.

 

“너의 의지는 자유이다. 네 의지는 그것이 황야를 원했을 때 자유였었고, 그 황야를 가로지르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까닭에 자유이며, 걸음걸이를 고를 수 있는 까닭에 자유이다.

그러나 네 의지는 네가 황야를 지나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에 또한 자우이기도 하고, 어느 길도 알 수 없는 길(迷路)처럼 모두가 반드시 폭幅이 한 걸음의 황야를 스치기 때문에 부자유이다.

여성, 아니 좀 더 분명히 말해서 결혼은 네가 대결해야할 인생의 가장 큰 대표자이다.“

 

하지만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는 결혼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결혼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쇼펜하우어다운 글이다. 그러나 칼릴 지브란의 견해는 다르다.

 

“서로 사랑하라. 허나 사랑에 속박되지는 말라.

차라리 그대들 영혼의 기슭 사이엔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 편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 저희의 빵을 주되, 어느 한 편 빵만을 먹지는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기타 줄들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허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어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서 ‘결혼에 대하여’ 라는 글 중 일부분이다.

 

서로 예속하지 말고 자유를 주는 가운데에서 사랑에서 비롯된 결혼이 계속되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희망‘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도 있지만, 자꾸자꾸 희망을 축소하거나 포기하면서 사는 것이라고 볼 때, 현실 속에서 일곱 빛깔 무지개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도 축하해줘야 할 것이고, 무늬만으로 행복하게 사는 듯한 두 사람도 축하해 줘야 할 일이며, 수많은 어려움을 겪은 뒤 서로 헤어진 사람들의 삶도 축하해줘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불현듯 정현종 시인의 <고통의 축제>의 끝 부분이 가끔씩 가슴을 툭 치며 지나갈 때가 있다.

 

“나는 축제주의자입니다.

그중에 나는 고통의 축제를 가장 사랑합니다.

합창소리 들립니다. 우리는 ‘행복’하다고,“

 

계사년 오월 스무아흐레  신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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