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노,병,죽음

바보신은 말한다 - 에라스무스

언러브드 2013. 6. 11. 10:05

 

“인생의 초년이야말로 가장 즐겁고, 가장 유쾌한 시절이지요. 그 사실을 누가 모르겠어요.

우리가 어린이들을 귀여워하고 입을 맞추면서 쓰다듬어 주는 것도, 설령 원수라 해도 상대가 어린애라면 도외주려 하는 것도,

다 그들에게 바보신의 매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 아닌가요?

신중한 ‘자연’은 갓난아기들에게 그러한 매력을 선물함으로써 그들을 길러 내는 사람들의 노고를 보상해주고,

그들이 어른들의 보호를 받도록 해 주고 있는 거예요.

 

이러한 유년 시절 다음에는 청소년 시절이 옵니다. 청소년들은 참으로 누구에게나 환영 받고 소중히 다루어지고 격려를 받지요.

모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기꺼이 손길을 주고 있어요!

이들의 어리석은 젊음의 매력이 바보신인 내게서 비롯되지 않는다면 대관절 어디에서 비롯되었겠어요.“?

나는 젊은이들이 분별 및 그에 따르는 근심 걱정을 안 가져도 되도록 해주고 싶답니다.

그러니 그들의 어리석은 매력도 다 내 덕분 아닌가요?

그런데 그들이 성장해서 공부를 하고 처세술을 배우게 되면, 그들의 겉모습은 사라져 가고, 그들의 활기는 시들어 가 버리지요.

 

내게서 멀어져 갈수록 인간은 점점 더 생기를 잃어버려요. 그리하여 마침내는 저 주체스러운 노년기를 맞이하지요.

이 노년기라는 것은 ‘자기 자산에게나, 남에게나 짐이 되는’ 것이랍니다.

만약 내가 그처럼 엄청난 괴로움을 도와주기 위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아무도 이 노년기를 견뎌 내지 못할 거예요.

 

시인들이 노래하는 신들은 무덤 옆까지 다가선 노인네들을 변신시킴으로써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지요.

마찬가지로 나는 그러한 늙은이들을 다시금 초년기로 데려와 줍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노인들을 두고 ‘도로 어린애가 되었다.’ 라고 말하는데, 참으로 지당한 표현이지요.(...)

 

사람들은 그들이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고 헛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바로 그렇게 때문에 그들이 도로 어린애가 되었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헛짓을 하고, 잠꼬대 같은 헛소리를 하는 것이야말로 유년기 매력의 전부가 아니겠어요?

어른처럼 이치를 따지는 어린애란 끔찍스러운 괴물이잖아요?

다음 격언이 그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지요. ‘ 어린애의 조숙한 지혜는 가증스럽다.’

인생에 관한 완전한 경험과 아울러 생생한 정신력과 투철한 판단력이라는 장점까지 겸비한 노인을, 어느 누가 친구로 삼고 측근자로 되겠어요. 그런 노인을 견뎌 내기는 어렵죠. 차라리 잠꼬대 같은 소리를 지껄이도록 늙은이들을 내버려 둡시다.

이런 미치광이 늙은이들이 생겨나는 것도 다 내덕분이랍니다.(...)

 

늙은이들은 어린애들을 무척 사랑하고, 어린애들도 늙은이들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까닭은 끼리끼리 모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의 차이점은 주름살과 나이 뿐이에요. 연한 머리 털 색깔, 이가 없는 입, 가느다란 몸, 젖을 좋아하는 성향, 더듬더듬 말하는 말투,

쫑알쫑알 지껄이는 버릇, 우둔함, 나쁜 기억력, 경솔함 등 모든 것이 서로 닮았어요.

이렇듯 사람은 늙으면 늙을수록 어린애와 닮은 점이 더더욱 드러나지요.

마침 내 늙은이는 인생을 그리워하는 것도, 죽음을 느끼는 것도 못하게 됩니다. 마치 어린애처럼 말이지요,

그러다가 이 세상을 하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