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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 -펀글

언러브드 2013. 3. 25. 12:16

 

10년 전 의대실습생이던 시절에 응급실에서의 일이다. 그날 저녁 응급실은 초만원이었고 이상하게 교통사고 혹은 뇌출혈 등의

신경외과적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초저녁부터 몰려왔다.

밤 12시를 넘긴 그 시각에도 신경외과 당직 수술팀은 벌써 수시간째 수술중 이였다.

그때 60세를 넘기신 한 할머니 환자가 의식불명으로 응급실에 도착했는데 응급 뇌단층촬영 검사 상 응급수술이 필요한 뇌출혈 환자였다.

하지만 이미 병원에는 집도할 의사도 없고 현재 수술중인 환자도 끝날 시간을 기약하기 힘든 상태인 터라

담당의사는 타 대학병원으로 전원을 권유했으나 이미 그쪽도 응급수술이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한동안 고민하던 가족들은 응급수술이 최선의 방법이지만 사실상 수술을 해도 완전 회복의 가능성이 낮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는

결국 치료를 포기하고 더욱 상태가 나빠진 환자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 모습을 옆에서 시켜보던 나는 의문이 생겼다. 의식이 없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환자의 죽음을

가족 혹은 의사가 결정할 수 있을까?

이 환자가 지금 수술중인 환자보다 먼저 응급실에 도착했다면?

그래서 두 사람의 운명을 바뀔 수도 있었다면 결국 죽음의 결정은 의학적 것이 아니라 상황적 현실에 따르는 것인가?

아무리 전문가라고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내가 이런 딜레마적 상황에서 결정한 죽음이 과연 항상 옳은 판단일 수 있을 까?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사실 나는 죽음이 두렵다.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관계 맺고 만들어 온 작지만 거대한, 그래서 그 자신에게는 한 우주와 같은 무게였을 생명이

영원히 소멸되어지는 죽음. 그것을 무심히 지켜보는 것도 괴로울 진데 감히 내가 그것을 좌우할 결정을 수시로 내려야 한다니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사람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있으면 대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두렵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오버해서 허세를 부리며 그 대상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것이 그 하나인데

예를 들면 스카이다이빙을 즐기거나 암벽등반과 같은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이를 부정하기 위해 그런 스포츠에 골몰한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과장되게 그 대상을 인식하여 항상 회피하고 움추려 드는 경우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시로 밀려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세상에 나 혼자 버려졌다는 고립무원감 등의 극심한 불안상태에

빠져드는 공황장애라는 정신질환이라 할 수 있다. 

 

두 가지 경우처럼 의사들이 의술을 직업으로 선택한 내면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죽음을 다루는 학문을 통해 ‘죽음의 지식’을 쌓고 ‘죽음을 마스터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할 것이라는

무의식적 환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정신과의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쳐 죽음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지켜볼 용기를 포기하고

마음의 병으로 관심을 돌린 경우라고 이야기하는 동료의사들도 있다.

아무튼 나는 의사이면서 정신과 전공이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꽤나 컸나보다.   

대학병원에서 4년간 전공의 기간동안 나는 병상에서 돌아가시는 내 환자를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곳 성모병원에 온 이후 나는 거의 매일 죽음과 마주서게 된다.

치매와 중풍으로 자신의 대소변마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나의 환자분들은 매일매일 죽음과 싸우고 있다.

앞선 긴 사설에서 설명했듯이 ‘죽음’이라는 존재를 피해 다니던 내가 이곳에서 도망갈 곳도 없이 ‘죽음’이란 놈과 마주서게 된 것이다.

상태가 나빠진 환자의 보호자들은 항상 언제쯤 돌아가실 것 같은지를 은근히 물어온다.

현실적으로 먼 곳의 친척도 불러야 하고 장례 준비도 해야 하니 가장 궁금한 사항이겠으나 솔직히 나는 그 답을 모른다.

이런 질문 혹은 삶과 죽음의 판단을 해야 하는 내 자신의 결정에 대한 두려운 마음뿐이다.

…………

이 곳 병원에 새로 부임하면서 나는 ‘죽음’에 대한 학생시절 가졌던 잊혀진 기억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의사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죽음 앞에 겸손해져야 함을 배웠다.

누가 죽음의 시기를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의사나 환자나 자신이 알고, 처해진 범위 내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신의 뜻에 맡기는 것이 인간의 도리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