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노,병,죽음

自適하고 산다

언러브드 2010. 9. 11. 01:11

自適하고 산다

 

 

아, 나는 가는 곳마다 자적自適하네.

 

몸이 천하므로 작은 벼슬도 영광이요.

집이 가난하므로 박봉薄俸이라도 만족.

거처하는 곳은 화옥華屋이 아니라도 무릎이나 용납하면 그만이요,

음식은 산해의 진미가 아니라도 배만 부르면 그만이고,

혼자면 자작自酌, 둘이면 대작對酌.

시는 잘 지어 무엇 하리. 내 뜻이나 말할 뿐,

글도 탐독을 아니 하고 노곤하면 자고 마니,

이것이 모두 나의 자적이로세.

 

내가 북으로 중국에 놀 제 안마鞍馬의 소고를 가지고

동으로 부상扶桑에 방문할 제 주집의 걱정이 많았으니,

나의 적이 아닌 듯 하나 그것도 걱정을 삼지 않으니 내게 그 무엇이랴.

 

또한 보소 물은 도도滔滔히 길이 흐르고 바람은 휘휘 길이 불어서

고금古今에 잠깐도 쉬지 않건만 스스로 수고로움을 제 모르나니

진실로 내 천성에 맞는 것이면, 길에서 늙어 버려도 감심甘心 되는 일

 

메추리는 나무 한 가지로도 집이 훤칠하고,

봉새는 만 리를 날고도 또 남쪽으로,

오리 다리는 짧아도 제 스스로 만족하고,

코끼리는 코 길어도 편하게 사는 것을

나의 적適을 나도 또한 모르는 것, 대개 조물주의 시키는 바로세.

 

                                                                   홍귀달     <適庵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