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대우건설과 금호, 파멸로 치달은 동거(2)

언러브드 2009. 11. 24. 13:57

이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 자료를 기준으로 대우건설의 자산은 5조9780억 원. 12조9820억 원으로 재계순위 11위이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순식간에 자산규모만 19조 원에 육박하는 재계 순위 8위의 대재벌로 올라섰다.

인수주체의 덩치로만 보면 도저히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결과였다. 그해 말 기준으로 대우건설의 자산은 6조2723억 원(연결재무제표 기준)이었던 반면, 대주주로 올라선 금호산업은 2조9250억 원에 불과했다. 그해 시공능력은 대우건설이 업계 2위인 5조4600억 원(토목건축 기준), 금호산업은 1조6370억 원이었다.

당장 잡음이 생겨났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거세게 반발하던 대우건설 노조를 달래기 위해 △차입금 최소화 △금호건설과 합병 백지화 △5년간 전직원 고용승계를 내걸었다. 그러나 차입금 최소화 조건은 결국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컨소시엄에 끌어들인 JP모건, 연기금, 미래에셋, KTB네트워크, 메릴린치 등 재무적 투자자(FI)들의 투자 금액이 무려 4조5000억 원에 달했다. 금호아시아나는 그들에게 일정 수익(2009년 12월 15일 대우건설 주가가 3만2500원 미만일 경우 정해진 가격으로 FI들의 주식매입하는 조건)을 보장해줬다. 3년 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파멸의 수렁에 빠뜨린 풋백옵션 조항이었다.

공멸의 길이었나

노조와 시장의 우려는 사실이었음이 곧 확인됐다. 금호아시아나가 대우건설을 삼키기 위해 끌어다 쓴 과도한 차입금이 양자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차입에 따라 새로 발생한 이자비용만 연간 581억 원에 달했다.

금호 측은 일단 주가부터 끌어올려야 했다. 2007년 3월 6일, 오남수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사장은 기업설명회(IR)에서 대우건설 주식 감자의사를 밝혔다. 자사주를 사들여 주가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해 7월, 옛 대우그룹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대우센터 빌딩을 총액 9600억 원에 모건스탠리 부동산펀드에 팔았다. 옛 대우맨들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던 곳은 이렇게 새 주인을 찾아갔다. 권 부위원장은 "당시 예전 대우그룹에서 일하셨던 선배들의 전화가 회사로 많이 왔다. 안타깝다는 말들이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옛 대우그룹의 상징이던 대우센터는 금호아시아나그룹명을 달아야했다. 이 빌딩은 이후 미국계 자본에 팔렸다. 대우의 기억은 이렇게 사라져갔다. ⓒ연합뉴스

결국 그해 8월 27일, 금호산업은 자회사 대우건설 주식1357만 주를 주당 3만4000원에 유상감자한다고 공시했다. 인수기업이 피인수 기업의 주가 부양에 애쓰는 것을 두고 당시 대우건설 내부에서는 "외국계 투기펀드와 금호가 하는 짓이 뭐가 다르냐"는 불만이 쏟아져나왔다. 그해 말에는 자기주식 소각을 위해 1000억 원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가는 기대한만큼 오르지 않았다. 당시는 경기가 정점에 달했을 때로, 특히 건설주들의 주가는 더 이상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우건설은 박삼구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또 다른 야심작이었던 대한통운 인수에도 적극 활용됐다. 인수가격 4조1040억 원 중 대우건설은 1조6400여억 원을 써야했다. 관련 금액 조달을 위해 대우건설은 2008년 3월 14일, 교환사채(EB) 5460억 원 어치를 발행해야 했다. 재무구조가 더욱 나빠진 것이다.

계열사 실적을 높여주는데도 대우건설은 이용됐다. 직원들의 금호생명 퇴직보험 가입에만 1000억 원을 넘게 썼다. 노조 관계자들은 "우리를 인수한 금호의 경영시스템이 오히려 우리만도 못했다"고 혀를 찬다.

한 노조 관계자는 "금호그룹 사람들이 회사에 찾아와 그룹식 경영시스템 이식을 시도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회계 프로그램분양 시스템이 오히려 금호보다 훨씬 뛰어났다. 당시 우리는 건설 현장에서의 현금 입ㆍ출금과 외주업체 지급대금 결제 등을 모두 은행을 통화 전산화시켜놓았다. 그러나 여전히 금호건설은 손으로 어음전표를 끊는 수준이었다. 결국 우리 인력이 그룹 경영혁신본부로 파견돼 금호그룹 혁신 작업에 참여할 정도였다. '이 정도 회사에 우리가 먹혔나'라고 생각하니 솔직히 자존심이 상했다"라고 말했다.

양 측의 화학적 결합이 쉬울 리가 없었다. 대우건설 직원들과 금호아시아나 계열사 직원들은 서로 상처를 주고 있었다. 금호 측이 3명을 조건으로 파견한 고위 직원이 지휘하는 팀과 나머지 팀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우건설 회생의 기반이 됐던 팀워크가 깨져나갔다.

경영방식에서도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마찰이 생겨났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총수가 전권을 휘두르는 전형적인 재벌식 의사결정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회계부문에서 일하던 한 관계자는 "의사결정 속도가 그렇게 느려질 수 없었다. 총수가 사인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도 되지 않았다.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