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대우건설과 금호, 파멸로 치달은 동거(1)

언러브드 2009. 11. 24. 13:50

2006년 6월 22일, 금호아시아나그룹 컨소시엄이 대우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전년 말 인수의향서 접수가 시작된 이후 장장 6개월에 걸친 레이스가 서서히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한때 한국 재계를 대표하던 대우그룹의 주춧돌이 사돈가(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차남 선협 씨는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장녀 은형 씨와 부부 사이였다)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사돈의 품에 안긴 대우건설의 3년은 평탄하지 못했다. 그룹광고에서처럼 '아름다운 동행'은, 적어도 대우건설 임직원들에게는 먼 얘기였다. 2009년 11월 23일, 딱 3년 5개월이 흐른 지금 대우건설의 임직원들은 다시 거친 벌판에 섰다. 새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그것도 가장 원치 않는 방식으로, 가장 원치 않는 자들의 품에 안기길 기다리며.

대우그룹 해체 후 대우건설이 걸어온 길은 외환위기 이후 이어진 한국 기업 인수·합병(M&A)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의 연속이다. 대우건설 노동자들은 무리한 매각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들의 주장은 어떤 근거를 가졌는가를 지난 역사에서 되짚어봤다.

▲23일 저녁, 대우건설 노동조합원들이 금호 퍼스트 타워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었다. 대우건설 전체 임직원 3700여명 중 조합원 수는 1300여명에 달한다. 가입률이 이처럼 높은 이유에 대해 노조 관계자들은 "지난 수년 간 피인수 과정을 겪으면서 조합원 수가 늘어났다"고 말한다. ⓒ프레시안


립, 고난 후 뒤따라온 '자율경영'

대우건설은 이른바 '대우 신화'의 상징이었던 ㈜대우가 외환위기 이후인 지난 2000년 12월,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로 쪼개지면서 탄생한 기업이다. 김우중 회장의 무리한 '세계 경영'이 외환위기에 발목 잡히면서, 재계순위 2위에 올랐던 대우그룹은 1999년 8월, 12개 주력계열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공중분해되는 참담한 결말을 맞았다.

㈜대우의 주력 사업부문에서 새출발한 대우건설은 한국 대부분의 재벌계열사에 익숙한 '회장님'의 지휘 없이, 정부의 감시를 받으며 독립의 길을 걸었다. 출발은 고달팠다. 옛 명성은 비스킷처럼 수주현장에서 부서져내렸다. 아파트를 지어도 브랜드 경쟁력을 의심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기술력은 국내 최고임을 자부하던 토목 부문에서도 일감을 찾기 어려웠다. 당시를 기억하는 30년 '대우맨' 권혁수 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당시는 완전히 망하는 분위기였다. 새출발이 무척 힘겨웠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위기는 조직원들의 자율경영을 북돋우는 기회로 되살아났다. 각 팀원이 자기 맡은 일은 스스로 책임지는 분위기가 서서히 정착됐다. 때마침 원전입찰에 연달아 성공하면서 국내 건설사 3강의 자리를 되찾아왔다. 2003년 신고리 원전 1, 2호 입찰에 LG건설, 삼성물산을 제치고 가장 많은 지분율(51%)로 참여해 기술력을 완연히 인정받았다. 이해 12월, 대우건설은 출범 2년 10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2003년 대우건설은 매출액 4조2311억 원, 영업이익 3127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년보다 23%가 증가한 결과였다.

실적은 빠른 매각 작업 진행을 앞당겼다. 정부로서는 빠른 시일 내 민간에 기업을 되팔아 재정을 채울 필요성이 있었다. 2004년 3월, 대우건설 매각주간사 선정공고를 시작으로 독립의 길을 나섰던 대우건설은 새 주인찾기에 돌입했다. 2006년 1월, 본입찰 참여자는 무려 10곳에 달했다.

▲지난 2006년 6월 22일, 자산관리공사는 대우건설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금호아시아나그룹 컨소시엄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악연의 시작이었다. ⓒ연합뉴스

 


악연의 시작

최종까지 경쟁을 벌인 이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컨소시엄과 프라임산업 컨소시엄이었다. 매각주간사인 삼성증권이 그해 5월 "프라임산업보다 금호가 대우건설 인수에 유리하다"는 보고서를 내면서 파문이 일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승부의 추는 금호 쪽으로 기울었다. 금호아시아나 컨소시엄은 인수가로 주당 2만6980원을 써냈다. 시가의 두 배에 달하는 거액이었다. 노조는 당시 "고가매각은 인수자의 부담을 높여 오히려 기업의 영속성을 떨어뜨린다"고 했으나 여론의 관심을 모으지는 못했다.

출발이 삐걱거린데다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남은 호남 기업을 밀어주려 한다"는 특혜시비가 일어났다. 일찌감치 매각주간사 선정 비리 의혹으로 자산관리공사(KAMCO) 담당직원은 옷을 벗었다. 숱한 잡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해 10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무려 6조40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들여 채권단이 보유하고 있던 대우건설 주식 전량(72.1%)을 사들였다. 당시 시장의 예상가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도 5조 원대였다. 일부 탈락업체들이 법적 대응을 준비할 정도로 파장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