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통계 고려 선별한 100명 심층 인터뷰
SKY 대학생 2명…인서울 4년제 16명뿐
70명 “정당한 노력 대가 못받아”
81명 “학벌이 중요다고 생각”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은 환경과학자이자 인구 문제 전문가인 도넬라 메도스 박사의 에세이를
번역가 이케다 가요코가 재구성한 글이다.
63억명 세계 인구를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하면, 100명 가운데 52명이 여성, 48명이 남성이고,
90명은 이성애자, 10명은 동성애자이며, 은행에 예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부유한 8명 안에 든다’와 같은 식이다.
차이와 불평등, 자원의 편중 상태를 이해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겨레>는 이를 청년 담론에 차용해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이라는 가정 아래
지역과 성별, 학력과 학벌 등으로 분류한 청년 100명을 심층 인터뷰하고 지역 격차와 학벌 서열, 불평등의 문제를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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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청년은 ‘인서울 4년제 대학생’을 말한다.
주류는 ‘스카이’(SKY) 대학생이다. 이들이 한 말은 ‘요즘 청년들’의 견해가 된다.
한국의 입시란 이 대학들이 어떤 전형으로 신입생을 뽑느냐다. 이들의 도서관 대출 순위는 20대의 독서 트렌드가 된다.
심지어 이들이 대학에서 자퇴하면 신문 1면 머리기사로 소개된다.
한국에서 깎고 다듬어진 ‘청년’이라는 상징은 누군가를 과잉대표하거나 과소대표하는 낱말일 뿐이다.
‘관심의 편중’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조국 사태’였다.
서열화한 대학의 정점에 있는 일부 대학생의 발언은 연일 신문과 방송을 도배했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스펙 품앗이’ 의혹에 대해 분노하자 이는 곧 ‘20대의 분노’로 보도됐고,
그 분노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능력에 따라 정당하게 순위를 매겨 차별해달라’는 의미의 ‘공정’이 됐다.
이 ‘공정’ 키워드는 공론화 과정까지 거쳐서 힘겹게 만들어놓은 대입제도 개편안을 1년 만에 뒤집는 위력을 발휘했다.
언론은 11월28일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이 서울 소재 16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도,
너나없이 “2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수능”이라고 일반화했다.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은 이런 과잉대표에서 벗어나자는 문제의식과 성찰에서 출발했다.
핵심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생, 중위소득 이상 가정, 남성’에서 벗어나기. 이를 위해 2019년 한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광각렌즈로 들여다보기로 했다.
전국에서 만 19~23살 청년 100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와 함께 심층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100명은 인구주택총조사(2015년), 한국교육개발원 자료 등 각종 통계를 참고해 이들이 진학한 대학교의 유형과
고등학교 졸업 뒤 바로 취업한 비율 등을 고려해 분류했다. 지역과 성비도 맞췄다.
대학 유형을 주로 고려한 것은 적어도 현재 시점에서 청년들의 미래를 가르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이 비율에 따라 비서울권 사립대학 29명, 전문대 28명, 서울 소재 대학 16명, 비서울권 국립대학 10명, 취업 및
자영업자 10명, 무직 등 기타 7명을 만났다.
이렇게 한국 청년을 100명으로 축소했더니, 스카이에 다니는 ‘요즘 청년들’의 비율은 단 2명이었다.
우리는 그동안 몫이 없었던 98명의 몫을 채워보기로 하고 스카이 2명은 <한겨레>가 만난 100명에서 제외했다.
단, 취재 과정에서 만난 24살 이상 청년 18명은 설문에선 제외하고 심층 인터뷰에는 추가했다.
100명을 만나기 위해 기자 4명은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100명 중 1명이 되어달라”고 읍소했다. 섭외를 거절당할 때가 많았지만, 운 좋게 연결되면 짐을 싸서 취재원이 있는 지역으로 달려갔다.
4명이 오간 거리를 합치면 1만㎞쯤 된다. 그렇게 100명을 만나보니, 예상과 다른 결과가 여럿 나왔다.
서울 4년제 대학생 16명 가운데 절반은 대기업 입사를 희망했지만, 비서울권 4년제 사립대 학생 29명 가운데 대기업을 꿈꾸는 이는 2명에 그쳤다.
100명 가운데 30명은 노력에 따른 정당한 대가가 제공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70명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6명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46명은 그저 그렇다고 느끼고, 48명은 가능성이 작다고 생각했다.
남성 50명 가운데 38명은 결혼할 생각이 있고 16명은 자녀를 가질 계획이 없었다.
반면 여성 50명 가운데 결혼할 생각이 있는 이는 30명으로 남성보다 적었고,
자녀를 가질 계획이 없는 이 역시 29명으로 남성의 2배에 가까웠다.
무엇보다 100명 가운데 79명은 조 전 장관 자녀의 입시 의혹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100명 중 60명이 그렇다고 분노하지는 않는다고 답했다. 의외의 결과였다.
광각렌즈로 바라본 청년들에게서 새삼 지역 격차가 확인됐다.
수도권 외 지역 거주 청년들의 상당수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주로 일자리와 문화 인프라 부족이 그 이유로 꼽혔다.
특히 서울에 친척 집이 있거나 서울을 오간 경험이 있는 청년들은 각종 인프라가 풍부한 수도권 생활을 더욱 갈망했다.
김지경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를 두고 “청년 문제가 아니라 지역 문제라고 해야 한다”며
“지역균형발전을 하지 못한 국가발전상의 문제를 지역 청년이 떠안게 됐다”고 지적했다.
모든 자원이 서울로 쏠리는 상황은 수도권과 지역을 수직으로 분화시켰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을 기획해놓고도 취재 과정에서 여전히 선입견을 가지고 있음을
여러 차례 확인했다. 비진학 고졸자나 수도권 외 지역 대학, 전문대 학생이 그저 절망만 하며 미래를 꿈꾸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헬조선’의 ‘엔(N)포 세대’ 다수는 지역 격차나 학벌 차별 등에 좌절하고 상처 입은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신의 미래가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낙관(100명 가운데 69명)했다.
88만원 세대와 엔포 세대론이 말한 ‘불행한 현실에 희망을 잃은 청년’이라는 특정한 모습만 주목하려 했던 관성 탓이다.
청년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구조를 바꿔낼 수 있다면 젊음의 탄성은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엿봤다.
언론이 서울의 주요 대학 청년들을 과잉대표하는 관성처럼 좌절만을 전시하는 것도 다른 형태의 일반화일 것이다.
기획을 위해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청년을 만나겠다는 취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출간한 <청년팔이 사회>를 쓴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차라리 ‘청년은 없다’고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는 청년을 단일한 집단으로 보는 기존 청년 담론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한국 청년이 만약 100명이라면’이 세대 내 분화를 추구했다는 건 나아간 구도지만, 근본적으로 왜 청년을 버리지 못하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고 했다. 의미 있는 지적이었다.
김지경 연구위원 역시 “지금의 청년세대는 너무나 다분화돼 있기 때문에 세대 내 경향성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의 말대로 100명이 내놓은 각양각색의 답변에서 실제로 유의미한 경향을 솎아내긴 어려웠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청년이라는 키워드로만 세대를 보고 그 안의 다양한 정체성을 살펴보려 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100명에게 물은 심층 설문 문항이 한 사람당 100개 이상인데도, 기사에서 통계를 선명하게 앞세우지 않은 까닭이다.
어쩌면 그동안의 청년 담론이 설명하고 그려왔던 청년은 이미 어디에도 없을지 모른다.
서혜미 강재구 김윤주 김혜윤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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