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에도 시대(1603-1867)의 화폐 제도

언러브드 2014. 1. 17. 06:19

에도 시대(1603-1867)의 화폐 제도에 대해.

 

 

도쿠가와 막부가 일본을 통일 한 이후 막부가 화폐 발행권을 독점하고 화폐의 양식을 통일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금(金), 은(銀) 전(銭 동銅) 3종의 화폐로 구성된 삼화제도(三貨制度)가 제정되었습니다.

막부가 제정한 화폐제도는 그전까지 각지에 유통되던 다양한 화폐 형태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었습니다.

 

금화(金貨)는 오오반(大判) 금화 1매(枚)를 1냥(両)으로 하여 기준으로 삼았고

1냥은 4분(分), 1분은 4주(朱)의 단위로 하여 4진법의 단위로 나타내는 '계수화폐(計数貨幣)'를 사용했습니다. (1냥=4분=16주)

 

은화(銀貨)는 무게가 그대로 화폐의 가치가 되는 '칭량화폐(秤量貨幣)'를 사용해으며

기본 단위로는 문(匁), 1문은 10분(分), 1000문은 1관(貫)이었습니다.(1문=10분, 1관=1000문=10000분)

 

전(銭)은 동전 1개를 1문이라 하고 1000문이 1관문(貫文)이 되는 식이었습니다.(1관문=1000문)

 

이처럼 금, 은, 전이 각각 별개의 체계를 갖고 단위의 명칭도 차이가 났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화폐의 교환은 시세에 따라 달랐는데 시대에 따라서 변했습니다.

 

1700년경에는 금화 1냥(両)에 은화 60문(匁), 전은 4000문(文)이었고

1842년에는 금화 1냥(両)에 금화 4분(分), 금화 16주(朱), 전이 6500문(文)이었습니다.

 

 

동일본은 금화가 주로 사용되었고 서일본은 은화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동일본에는 금의 산지가 많았던 반면 서일본에는 은의 산지가 많았고 중국과의 무역에서 은화를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금, 은, 전의 3화를 주조하는 곳을 금좌(金座), 은좌(銀座), 전좌(銭座)라고 했는데

이는 막부 직할이 아니라 막부의 청부에 따라 주조가 이루어졌습니다.

금좌는 현재 일본은행 본점의 위치에 있었고 은좌는 오늘날 도쿄의 번화가로 유명한 긴자(銀座) 지역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막부는 경제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전국적으로 동일한 화폐를 정했는데 대형 화폐는 일상적으로 유통되는 것이 아니므로

대량으로 유통시킬 수 있는 엽전을 만들었습니다.

대형은 표면에 제작자명을 먹으로 그렸으나 엽전은 그럴수가 없으므로 1600년 이후 한냥(一両) 등의 금액을 각인한 엽전이 대량 생산되어 대량으로 유통됩니다.

 

 

 

 

慶長大判(おおばん)
1601(慶長6)年
重量165.5g、品位・金68%

 

 

 

 

 

 

 

慶長小判(こばん)
1601(慶長6)年
重量17.9g、品位・金84%

 

 

 

 

 

 

 

 

 

 

慶長一分金
1601(慶長6)年
重量4.5g、品位・金84%
上が表面、下は裏面

 

 

 

慶長丁銀
(けいちょうちょうぎん)
1601(慶長6)年
品位・銀80%

 

 

 

 

 

慶長豆板銀
(けいちょうまめいたぎん)
1601(慶長6)年
品位・銀80%

 

 

 

 

 

 

 

 

寛永通宝(かんえいつうほう)
(銅一文銭(どういちもんせん)
1636(寛永13)年
右が表面、左は裏面

 

 

현재 일본에서 사용되고 있는 화폐 단위인 엔(円)은 메이지 4년(1871년) 신화조례를 통해 제정된 것입니다.

 

화폐제도가 바뀐 이유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일본과 서일본이 사용하는 화폐가 달랐고(동일본은 금화, 서일본은 은화)

각 번에서 독자적으로 발행한 지폐도 있었기 때문에 메이지 신정부 차원에서 중앙집권적 국가 건설을 위해 화폐를 개혁한 것입니다.

 

http://www.saganokosen.jp/edojidaikaheiseido.htm

http://www.77bank.co.jp/museum/okane/0804.htm

http://park2.wakwak.com/~hero/yatai-matsuri/06-dic/ka.html#kahei

 

 

그 이전의 일본 화폐에 대하여 추가하겠습니다.

 

일본의 고대에는 물물교환이 주로 이루어졌는데 점차 쌀, 베, 소금 등이 화폐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고 이를 물품 화폐라고 합니다.

아스카 시대에는 중국의 개원통보(開元通宝)를 본 따서 당본전(富本銭)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683년)

 

나라, 헤이안 시대에는 화동개진(和同開珎)이 만들어졌고 250년간 금화 1종류, 은화 1종류, 동전 12종류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금화와 은화를 만들기 전까지 600년간 일본에서 화폐가 만들어진 일은 없고

중국에서 수입한 화폐가 이용되었습니다.


헤이안 시대 후기,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에는 송나라와의 무역을 통해 사금(砂金)을 수출하는 대신에 송나라의 동전을 수입하여

일본내에서 사용했습니다.

 

1404년에 명나라와 무로마치 막부 간에 무역이 이루어졌는데 동전은 더욱 중요한 수입품이 되었고

특히 영락통보(永楽通宝)는 인기가 있어서 전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16세기 중반에는 금은의 채굴이 번창했고 금광이나 은광을 손에 넣은 다이묘들은 금화나 은화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다케다 신겐이 만든 코우슈킨(甲州金)이었습니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금화와 은화를 만들기 시작했고 1588년에는 天正長大判, 天正菱大判 등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민들은 명나라 동전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이후 에도시대...는 위에 설명했으므로 패스

 

 

 

富本銭

 

和同開珎

 

宋銭

 

永楽通宝

 

甲州金

 

天正長大判

 

http://www.mint.go.jp/kids/page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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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의 화폐 가치를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대략 환산시켜서 비교한 사이트.

이 사이트에서 보면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이 계산해 놨습니다.

・一両 : 6万円 
・一分 : 1万5千円
・二朱 : 7千5百円
・一貫文 : 1万円
・一さし : 1千円
・四当銭 : 50円
・一文(一銭) : 10円

위에 나온 것처럼 1냥은 6만엔이고 100엔을 1000원으로 계산해도 60만원 정도입니다.
50냥이면 300만원 정도가 되겠네요.(현재 환율로 비교하면...)


http://hirose-gawa.web.infoseek.co.jp/mame/kahei.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