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람

법정스님 1주, 남겨진 그들은 맑지도 향기롭지도…

언러브드 2011. 2. 27. 14:16

 

 

 법정 스님 열반 1주기인 28일을 앞두고 불거진 서울 성북동 길상사 사태가 신임 주지가 내정되면서 봉합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일부 신자들 사이에서는 반발 기운이 역력하다.

덕현 스님의 사퇴로 공석이 된 길상사 주지로 24일 덕운 스님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덕운은 덕조, 덕인, 덕문, 덕현, 덕운, 덕진, 덕일 등 법정의 상좌 7명 중 덕현의 바로 아래인 5번째 상좌다.

출가 이후 줄곧 선방에서 정진해왔다.

길상사는 10여년 간 개인 사찰로 머물다 덕현이 주지 시절 전남 순천 송광사의 말사로 편입됐다.

그러나 법정이 창건한 절이어서 주지 추천권은 법정의 문도(제자들)에게 있다.

법정의 문도가 주지를 내정해 송광사에 추천하면, 송광사가 이를 조계종 총무원에 품신하는 절차를 거쳐 임명된다.

임명 시기는 법정의 1주기 추모법회가 열리는 28일 이후가 될 전망이다.

역시 덕현의 사퇴로 자리가 비게 된 사단법인 '맑고 향기롭게'의 이사장 선출 시기도 가닥을 잡았다.

당연직 이사인 길상사 주지를 포함, 이사 11명 중 호선하게 돼있어 추모법회를 치른 뒤 새 이사장이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덕현은 2009년 법정의 뜻에 따라 선방을 떠나 제6대 주지에 올랐다.

2010년 7월에는 법정의 뒤를 이어 맑고향기롭게의 제2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길상사와 맑고향기롭게를 의욕적으로 이끌던 덕현은 그 동안 단체의 성격, 방향성 등을 놓고 맑고향기롭게 이사진과 갈등을 빚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의 반목이 첨예화 되면서 끝내 이사장직은 물론 길상사 주지직까지 내놓게 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과정에서 덕현이 홈페이지에 남긴 '그림자를 지우며'라는 글과 '동안거 해제법문 동영상'이 논란을 증폭했다.

덕현은 '그림자를 지우며'에 "나는 스승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그 동안 여기 있었다"며 "지금은 설령 법정 스님 당신이라 해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수행자다운 일일 것 같아 산문을 나선다"고 썼다. 사퇴 결정까지 마음고생이 적잖았음을 시사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산중의 한거에나 익숙한 사람이 갑자기 도심의 도량에 나앉아 너무 많은 일을 다뤄야 했고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으며 너무 크고 복잡다단한 요구와 주문들에 끝없이 시달려왔다"면서 "그 중 가장 어려웠던 것은 멀고 가까운 사람들의 정제되지 않은 욕심과 야망, 시기심, 그리고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고충과 충심을 헤아리지 않고 그 결정과 처신을 무분별하게 비판하고 매도하는 말들, 그 뒤에 숨은 아상들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덕현은 "맑고향기롭게의 몇몇 임원들이나 길상사나 맑고향기롭게 안팎에서 나와 선의를 가진 불자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거의 없다. 이 무상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자각을 이룰 것"이라며 "뜻을 얻으려 하는 자는 욕망을 버려야 하고 세상을 얻으려는 자는 자기를 비워야 한다"는 고언을 남겼다.

'그림자를 지우며'가 우회적으로 소회를 표현했다면, 동안거 해제 법문은 직설적이다.

덕현이 맑고향기롭게 이사장을 사퇴하게 된 배경에 다른 이사들과의 갈등이 있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 상당수다.

특히 '김모 감사가 이사장 직무 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지방 대의원들이 대의원 총회에 불참하겠다면서 이사장 사퇴를 압박했다' 등의 내용은 그간 양측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았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을 본 일부 신도는 길상사 홈페이지에 덕현 지지의사를 밝히는 한편, 길상사와 맑고향기롭게를 비난하는 의견을 쏟아냈다.
사태가 커지자 길상사는 내부 회의를 거쳐 23일 이 두 게시물을 삭제하고 공지문을 통해 "사중의 안정과 화합을 바라는 길상사 불자님들, 그리고 회주 법정 스님의 뜻을 기리고자 하는 많은 분의 이해를 부탁한다. 삭제한 글을 다시 올리시거나 곡해하는 글도 자제해 주시길 간곡히 부탁한다"며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덕현 지지자들은 더욱 반발했고, 삭제된 두 게시물을 직접 올리며 항의했다.

아울러 법정의 맏상좌인 덕조의 지지자들이 법정 유언장 조작설까지 제기하면서 이전투구 양상이 돼버렸다.

 

덕현에 앞서 덕조가 길상사의 주지였다. 그러나 10년간 수행에 전력하라는 법정의 뜻을 따라 송광사 불일암에서 정진 중이다.
길상사를 찾은 어느 불교도는 "고 길상화 보살(김영한)이 요정 대원각을 절로 희사하겠다고 청했을 때 법정 스님이 10년이나 거절했던 것이 사후에 이런 문제가 불거질 것을 내다 본 것"이라며 "법정 스님의 혜안에 감탄하면서 그런 무소유도, 맑고 향기롭게도 이어 받지 못하는 세태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법정 1주기 추모법회는 28일 오전 11시 길상사 극락전에서 예정대로 거행된다.

ac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