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람

덕현스님의 그림자를 지우며..

언러브드 2011. 2. 23. 10:36

 

 

 

1년 전 법정 스님의 법구가 장작불 속에서 한줌의 재로 타들어가는 순간 상좌(제자)를 대표해

 ‘화중생련’(火中生蓮·불속에서 연꽃을 피움)을 외쳤던 덕현 스님이 자신을 옥죄는 욕망의 불꽃을 견디지 못한 듯 길상사를 떠났다.

오는 28일(음력 1월26일) 법정 스님 1주기를 1주일 가량 앞둔 시점이다.

 

덕현 스님은 일요일인 지난 20일 짐을 챙겨 길상사를 떠나면서 홈페이지에 ‘그림자를 지우며’라는 글을 올려

 “우리는 누구나 각자의 인연을 따라서 자신의 길을 가야 하는 인생들”이라면서 떠나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먼저 “현대의 도심생활에 쫓기고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고 활로를 열어 주어야 할 큰 절의 주지 소임을

임기 도중에 그만두는 것이, 순수한 희망으로 배움과 수행의 길을 같이하려 했던 많은 어진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몹시 아프다”면서 사죄의 변으로 시작했다.

그는 “스승의 유언과도 같은 마지막 분부를 거역할 수 없어 그 동안 여기 있었고,

지금은 설령 법정 스님 당신이라 해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수행자다운 일일 것 같아 산문을 나선다”고 밝혔다.

 

서울대 법학과 재학시절 대학에 초청된 법정 스님의 강의를 듣고 감동해 출가를 결심한 덕현 스님은

지난 90년 법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짧은 법랍에도 불구하고

선방에서 안거(여름과 겨울 3개월씩 하는 선방의 참선정진)를 8번이나 참여한 선승이었다.

법정 스님의 7명의 상좌 가운데 4번째인 그가 갑자기 서울로 불려와 길상사 주지를 맡은 것은

법정 스님이 암으로 와병중이던 지난 2009년 3월이었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길상사 주지를 맡아 길상사를 반석에 올려놓은 맞상좌 덕조 스님이 갑자기 주지직을 그만두면서

길상사 주위에선 법정 스님과 덕조 스님의 불화설이 터져나왔다.

덕조 스님이 ‘길상사’에 욕심을 내면서 법정 스님이 진노해 주지를 바꿨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법정 스님이 상좌들에게 남긴 유언 가운데 ‘맞상좌 덕조 스님’ 대목은 ‘자중하라는 경계성’에 가깝다.

법정 스님은 유언에서 ‘덕조는 맞상좌로서 다른 생각하지 말고 결제 중에는 제방선원에서,

해제 중에는 불일암에서 10년간 오로지 수행에만 매진한 후 사제들로부터 맏사형으로서 존중을 받으면서

사제들을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고 썼다.

 

(사)‘맑고향기롭게’도 법정 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덕조 스님이 아닌 덕현 스님을 2대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덕현 스님은 법정 스님 앞으로 보시된 길상사를 스승의 본찰인 순천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함으로서

길상사에 개인절이 아니라 공찰(公刹)임을 못박았다.

하지만 덕조 스님을 따르던 길상사 신도들과 또 (사)맑고향기롭게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덕현 스님이 적지않게 시달렸다는 내용이 덕현 스님의 고별 글에 포함돼 있다.

 

덕현 스님은 “가장 어려웠던 것은 멀고 가까운 사람들의 정제되지 않은 욕심과 야망, 시기심,

그리고 무리의 중심에 있는 사람의 고충과 충심을 헤아리지 않고 그 결정과 처신을 무분별하게 비판하고 매도하는 말들,

그 뒤에 숨은 아상(我相)들이었다”며

“나는 ‘맑고 향기롭게’의 몇몇 임원들이나 길상사나 ‘맑고 향기롭게’ 안팍에서

나와 선의를 가진 불자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거의 없다.

이 무상의 흐름 속에서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자각을 이룰 것이다”고 썼다.

 

덕현 스님은 길상사를 떠나기 전에 ‘맑고 향기롭게’의 이사장직에서도 사퇴할 의사를 표명한 것을 전해졌다.

길상사 홈페이지 게시판엔 법정 스님의 1주기도 안돼 정작 그의 주위에서

길상사라는 도심 거찰과 ‘맑고 향기롭게’란 조직의 명예를 두고 다툼이 나온 것을 두고 탄식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인간의 역사를 소유사이며 끝없는 인간들 간의 싸움의 원인과 고통이 소유욕 때문이라며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고 열반해서도 관도 덮지않은 채 그대로 태우고 자신의 책마저 더 이상 팔지 말라고 유언하고 떠났던

법정 스님의 1주기 추모법회가 오는 28일 오전 11시 길상사 극락전에서 봉행될 예정이다.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