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스크랩] `적당한 악` 과의 공생/소노아야코

언러브드 2009. 9. 12. 09:10

'적당한 악'과 공생하며 살아간다는 인식은 내게 대단히 중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내 의식에 '적당한 악' 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나는 바로 인간성을 잃는다. 자신이 대단한 인도주의자라 생각한다면 그 순간부터 누구든지 악취를 뿜어내게 된다.

 

 

사회에서도 적당한 악이 없는 곳은 오히려 거대한 부패와 연결된 실례를 20세기 후반만 해도 우리들은 역겨울 정도로 보아왔다. 모택동 덕분에 모든 인민이 행복하다고 단언했던중국은 언론을 탄압하고 인민의 사상 자유를 빼앗았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 정도의 특권계급이 인민으로부터 유리된 권력을 제멋대로 휘둘렀다.

'적당한'이라는 형용사가 붙는 상태만큼 사랑이나 용서를 생각나게 하는 말은 없다. 적당한 자신감, 적당한 가난 혹은 부유함, 적당한 좌절감.적당한 성실, 적당한 안정, 적당한 거짓말, 적당한 슬픔, 적당한 싫증, 적당한 기대 혹은 포기.... 이모두가 인간을 그윽하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좋은 맛과 향기나는 존재로 만든다.

그러한 사람은 인간의 분수를 알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러한 적당한 악을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결코 인정하지 않는 자칭 휴머니스트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이 향유하는 모든 편리함을 똑같이 누리면서도 발전소의 건설에는 반대하며, 언론에 발언하여 돈을 벌면서도 종이의 원료인 숲을 베는 일에는 반대한다.

 

 

 

살아간다는 자체 또한 사람들은 적당히 곤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적당하게 대지를 오염시키고, 숲을 황폐화시키고, 물과 공기를 더럽히고, 적당하게 타인이 누리는 편리함이나 행복의 몫을 완력으로 빼앗는다. 그러한 양심의 가책을 어느 정도 줄이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인간은 조금이나마 타인을 배려하는 해동을 취하게 된다.

 

 

나는 평생 적당하게 나쁜일을 해왔기에, 적당하게 좋은 일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살아가고 싶다. 그 외에는 달리 살아갈 뾰족한 방법이 없으므로.

 

 

책 <사람으로부터 편안해 지는 법> 중에서

 

출처 : 淨云의 책 속에서
글쓴이 : 淨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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