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람

[스크랩] 케네디家

언러브드 2009. 8. 26. 21:18

 

 로즈와 막내 에드워드 , 네 아들중 유일하게 살아있는 에드워드에게 로즈는 가장 [위대한 선생님]이다.

 

케네디가의 애환의 산 증인 로즈 . 케네디여사가 영광과 슬픔이 엇갈린 한세기를 보내고 오는 22일 1백회 생일을 맞는다. 이날 케네디 일가는 매사추세츠주 하이애니스 포토의 저택에 모여 그의 생일을 축하할 계획인데, 그의 세 딸 진, 유니스, 퍼트릿셔와 하나 남은 아들 에드워드, 28명의 손자와  22명의 증손자가 모이게 된다.  가족들은  1백송이의 장미를 포함한 많은 선물과 가톨릭 미사, 아일랜드 민요동요로 성대한 생일 기념식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미국議會는 3대에 걸쳐  케네디가를 미국 최고의  명문가로 키워낸 로즈. 케네디 여사를 기념하기 위해 22일을 [로즈.  피츠제럴드 . 케네디가에 대한 감사의 날]로 선포했다.

  로즈여사는 20세기초 보스턴 시장을 지낸 존 . 피츠제럴드의 딸로 태어나 1914년 주영 미대사 조제프.P. 케네디와 결혼했다.

  그는 4남 5녀를 낳아 아들 중 하나를 대통령으로 , 나머지 셋은 상원의원으로 키워냈다.  그런가 하면 4명의 자식을 사고로 잃었으며 장녀 로즈마리는 정박아였다. 1944년 장남 조의 전사.  4년 뒤 딸 캐슬린의 비행기 추락사. 1964년 당시 대통령이던 아들 존. F.케네디의 암살 , 68년 대통령 선거 유세중이던 아들 로버트의 암살을 겪으면서도 그는 굳세고 초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불행을 이미 오래전에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1938년 영국에 대사로 부임하는 남편을 따라가서 윈저城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영국왕 찰스1세의 다섯자녀를 그린 반다이크의 그림을 보고 두려움을 느꼈다.  그림속의 다섯자녀 중 둘은 어려서 죽었으며 나머지 셋은 아버지 찰스1세가 참수당한 뒤 서로 왕위를 놓고 다퉈 영국에 공포와 혼돈의 역사를 불러들이게 된다.

그러나 반다이크의 그림속에 있는 그들은 미래에 대해 아무런 근심도 없다는 듯 마치 시간속에 굳은 채 서 있었다.   로즈는 이를 보고 먼 훗날 자신의 아이들에게 닥칠 불행을 감지라도 한 듯 찰스의 자식들이 나중에 겪게 된 고통들을 떠올리며 떨었다고 말한적이 있다. 

  그의 강인함은 어디서 오는가.  거기에는 크게 보아 아일랜드 流.移民의  전통과 가톨릭신앙이 있다.  케네디家는 1848년  아일랜드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왔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에서 2월혁명이 일어나고 공산당선언이 발표되는 정치적 격동기였고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아래 전체인구 8백만 명 중 1백만명이 굶어 죽는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오직 살길을 찾으려는 일념으로 대륙에 건너온 케네디가의 1代는 하루 15시간씩  위스키술통을 만드는 중노동을 하면서 부지런히 富를 쌓아 나갔다.   고난에 가득찬 이민사가  4대에 이르렀을 때 케네디家는 드디어 미국의 대통령을 낳는 위대한 성취를 보았던 것이다.

   로즈의 남편은 자식들에게 인습을 무시하고 자신의 규칙대로 살고 원하는 것은 거침없이 밀고 나가라고 가르쳤다.  반면 로즈는 경건과 신앙, 예의ㅣ, 엄격함을 자식들에게 가르쳤다.

  그의 성품에 가장 깊은 영향을  준 것은 18세때 네덜란드에 건너가 블루멘탑에 있는 [성상수녀원]에서 교육받은 경험이다.  그는 거기서 자신의 종교적 성향을 발견했고 , 이후 전 생애를 신과 함께 보낸다.  명상을 통해 그는 자기 억재와 신앙을 익였으며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는 자신만의 성역을 얻었고  놀라운 침착성을 길렀다.  계속되는 불행을 겪으면서도 꿋꿋함을 잃지 않았던 힘은 바로 신앙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를 지우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나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무너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곧 케네디家의 정신이 쓰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손녀 마리아. 슈라이버는 [할머니는 한번도 자식들이나 결혼, 인생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는 문제가 있을 때 할머니는 늘 신에게 이야기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케네디家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로즈의 모습은 엄격한 훈련자요 철저한 어머니이다. 그는 다 자란 아들의 머리칼이 너무 길다고 또는 넥타이가 똑바르지 않는다고 꾸짖는 어머니이다. 손자들에게 어법에 맞는 말을 쓰라고 이르고 대통령후보의 연설을 듣다가 어법에 어긋난 표현을 발견하면 그 즉시 손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잘못된 부분을 일러주곤 했다. 한편 자신의 뿌리인 아일랜드를 사랑하여 늘 자녀들에게 아일랜드의 역사를 들려준뒤 독립운동의 영웅인  키티. 오쉬어를 노래한 예이츠의 시를 낭송해주었다.  이 굳센 여성도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최근에 와서는 전에 비해 사람들을 더 오랫동안 껴안는 등 감정을 짙게 드러내 보였다.

  로즈는 1세기를 살았다. 그동안 세상은 많은 변화가 있었고 , 어머니요 아내로서 충실했던 그의 삶은 어쩌면 오늘날의 문화와는 다른 시대에 속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성해방론자들은 로즈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대통령이 되기보다 대통령의 어머니가 되고싶다]고 말한다.

  로즈는 최근 하루종일 간호를 받으며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지만, 여전히 지성과 강인함을 잃지 않고 있다. 외손자 앤소니. 슈라이버는 [할머니의 일생이 남긴 중요한 메시지는 서로 사랑하며 가까이 지내는 행복한 가족이 모든 선물중 가장 큰 것임을 가르쳐준 것]이라고 말한다. 로즈 케네디의 1백살은 존경과 사랑으로 넘치고 있다.

글 / 외지 종합

출처/ 1990년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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