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아파트...

언러브드 2013. 7. 26. 23:29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한국인의 욕망과 갈등을 압축해 보여주는 곳이다.

성인이 되면 청약통장부터 가입하며 구입 행렬에 들어간다.

어느 동네 어떤 브랜드의 아파트에 사는지, 평수가 얼마인지가 사람을 구별하는 잣대로 작용한다.

아파트는 '사는 곳'이 아니라 '사는 것' 즉 재산 증식 수단이 된 지 오래다.

삶의 획일화, 소통의 단절, 도시 경관 파괴 같은 부정적인 말이 뒤따르는 곳도 아파트다.

아파트에 살든 살지 않든 아파트는 한국인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다.

최근 아파트(단지) 관련 책을 낸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와 곧 출판을 앞둔 박인석 명지대 건축학부 교수,

그리고 < 부동산 계급사회 > 저자 손낙구 국회 보좌관이 아파트의 의미, 공간정치, 주거와 삶, 공공공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매매와 집값 기대 심리의 위축 영향 때문에 아파트 전세 가격이 매매 가격의 60%를 넘어선 곳이

서울 25개 구 중 8개구로 늘어났다는 뉴스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대담은 23일 경향신문사에서 진행했다.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부동산 불패신화는 약발 떨어진 신흥종교

박철수=속 되게 표현하면 약발 떨어진 신흥종교 같다.

한때 부동산 불패신화가 있을 때는 계층과 상관없이 누구나 아파트 갖기를 소망했다.

저소득 계층에선 이 기회에 내 집을 가져야 했고, 고소득층은 부를 획득하는 기회로 삼았다.

최근 들어와서는 균열 조짐이 생기고 있다.

부동산이 엄청난 붐을 일으켰지만, 최근 보면, 중간계층 이상에선 일정 부분 애물단지다.

2000년대 이후부터 심화되면서 최근 급격하게 생긴 사회의 균열이란 게 곧 부동산의 굳건한 성채의 균열과 맥을 같이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손낙구=지방 광역시에선 전세가가 매매가의 60~70% 정도 된 현상은 오래됐다.

지방 광역시의 전세는 실수요를 반영하고, 매매 가격은 많이 안 오른다. 수요가 높지 않아서 가격이 높지 않다.

서울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건, 단순하게 보면, 매매가가 조금 떨어졌고,

전세가가 많이 오르면서 가격 폭이 좁아진 것인데, 일시적이고 과도적 현상으로 봐야할지,

지방 광역시 같은 추세로 갈지는 정부 정책이나 시장상황에 따라 가변적이지 않을까 싶다.

박인석=전세가 급등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원론적으로는 넌센스 같은 상황이다. 전세제도는 대한민국에만 있다고 한다. 사실 매매가의 60%만 받고 집을 빌려는 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억 원짜리 주택이라면 1억 원 받고 빌려줘야지, 왜 그런 자산 손실을 보겠는가. 전세는 주택가격이 오르리라는 전망이 확실하기 때문에 성립할 수 있는 제도다. 주택 가격이 안 오르는 상황이 몇 년 계속돼도 전세 제도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다시 오르겠지 하는 기대심리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부동산 신화는 끝났다'고 믿게 된다면 전세는 사라지고 월세로 바뀔 것이다. 당연한 시장원리다. 전세가가 급등해서 문제라는 것은, 한국적인 상황, 비정상적 상황을 반영한다. 주택가격은 항상 오르기 마련이라는 비정상적 믿음이 가득 찬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전세가 급등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건, 주택가격 상승이 주춤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벌어지는 이상한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

< 아파트와 한국사회 > 박인석 명지대 교수(왼쪽), < 아파트 > 의 저자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가운데) < 부동산 계급사회 > 의 저자 손낙구 보좌관이 23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아파트 단지 부근에서 서울의 아파트에 대한 문제점을 얘기하고 있다.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박철수=서울 강남일대에 반전세라 부르는 것들이 생겼다. 전세금 전체를 받고 집을 대여해주는 방식에서 전세 보증금은 낮게 책정하고, 차익 부분에서 시중 이자율을 적용해서 현금으로 매월 수익 올리는 방식이다. 이런 반전세가 등장하고, 일반화 된다는 것은 부동산 가격이 계속 상승 하리라는 기대 심리가 있는 한편 일부는 상승세가 이미 그 정점에 다다랐고, 그래서 내가 갚아야 할 금융비용은 세입자에 부담시키겠다는 뜻이다. 반전세도 결국은 여전히 주택가격이 상승하리는 믿음을 저변에 깔아 놓고 있는 것이다.

손낙구= 전세가격은 오른다고 하고, 집값은 떨어지니 어쩌고 하는 애매한 상황이다. 집 없는 서민들로서는 그야말로 견디기 힘든 때다. 집을 살 능력이 되더라도, 무리해 살려고 해도, 집 샀다고 깡통 찰까 걱정 안 할 수가 없는 때다. 전세에 살려고 해도 말이 안될 정도로 오르지않나. 서민들은 이런 힘든 시기를 살아야 한다. 이런 문제의 한가운데 아파트가 있다. 집없는 사람에겐 아파트는 여전히 들어가 살고 싶은 안식처다. 다른 주택 이용과 비교하면, 아파트는 3분의 2가까이가 소유자다. 단독주택은 소유자 비율이 절반도 안 된다. 전월세 사는 사람이 아파트에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죠. 소유자 사는 비율이 63%다. 아파트로 대표되는 한국의 집이 서민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세월이 계속 흘러가고 있다.

박인석='땅값이 언젠가는 오를 것이다. 땅은 거짓말 안 한다'는 믿음을 대부분 갖고 있다. 한국사회에 왜 이런 현상이 생기고, 또 아파트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아파트 때문에 땅값이 오르는 게 아니다. 문제는 아파트 단지다. 타운하우스 단지든 단독주택 단지든 단지는 다 문제다. 정부는 40~50년간 아파트단지 중심의 단지식 개발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바로 고밀 집중 개발 방식이다. 재개발도 신도시 개발도 그렇게 한다. 일부 토지에 최소한의 기반시설, 예를 들어, 진입도로만 설치하고 그 안에 최대한 고밀도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부동산 가격이 왜 오르느냐고 물으면, '땅이 좁아서, 땅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적어서 그런 거 아니냐' 말 하는데, 타당성도, 설득력도 없다. 그렇다면, 인구밀도 높은 나라의 땅값은 계속 올라야 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다. 주원인은 고밀 집중 개발 방식에 있다. 일부 토지를 집중적으로 고밀개발하여 개발이익이 커지면, 해당 토지의 지대가 엄청나게 올라가고 주변지역 땅값 역시 그 지대수준에 맞춰서 오르는 효과를 계속 발휘하게 된다. 용적률을 200%가 아니라, 100%로 하면 땅값은 반 밖에 안 오른다. 70년대 압구정 논밭 속에 현대아파트 단지를 짓듯이 지금도 논두렁 밭두렁 사이에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 땅값이 낮은 농경지나 저밀도 단독주택 지역 일부를 담장 쳐서 용적률 150%, 200% 아파트 단지를 만들어 몇 배의 개발이익을 구현한다. 그러면 주변지역들도 비슷한 개발이익을 기대하며 땅값이 오른다. 이렇게 오르는 거다. 기존 시가지와 비슷한 밀도로 정비하고 개발 하는 방식이라면, 땅값이 그렇게 오를 수 없다. 개발이익이 기존 시가지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크고 작은 건축 사업들과 큰 차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집중 개발은 지금도 계속된다. 아산, 화성 같은 지방도시에 느닷없이 논밭을 평당 몇 십만 원으로 수용하고, 용적률 200%로 개발해서 평당 천만 원에 분양한다. 주변 지역 지주들은 개발 이익이 얼마 남나 계산하고, 개발업자 몫인 적정 이윤 몇 %를 떼어 줄 것을 고려하면 땅값을 얼마까지 받아도 되나 계산하게 되어 있다. 이러한 집중 고밀개발 방식이 땅값을 급격하게 올려온 주원인이라고 본다. 성립하지 않는 가정이지만, 만약 공공투자로 훨씬 많은 토지에 인프라를 폭 넓게 깔고, 주변지역과 큰 차이 없는 밀도로 개발했다면, 이렇게 땅값이 급격하게 오르진 않았을 것이다.

#40년간 부동산 불패신화 산물이 아파트

손낙구= 산업화 이후 역대 정권은 모든 국민을 주택 소유자로 만드는 주택 정책을 펴왔다. 필요한 돈은 은행에서 주택 융자 즉 빚을 내서 집을 사게 해줬고, 집 지어서 공급하는 건. 건설 재벌한테 맡겼다. 바로 건설 재벌한테 선분양제라는 세계에 유례없는 특혜를 준 것이다. 주택 소유자로 만드는 데 공급한 주택 유형이 아파트였다는 것이다. 10년에 한번 꼴로 투기 광풍이 몰아쳤다. 부동산이 가장 훌륭한 투자처가 되어왔다. 와중에 부동산 불패신화가 자리잡았다. 그 불패신화 아래서 독재정권이 탄생해 유지되었고, 건설 재벌이 성장해왔다. 그게 오늘날 한국의 재벌이 되었고, 아파트 중산층이 그 과정에서 자라게 된 거다. 아이러니컬하게도그 40년 시간 동안 근대적 임대차 제도가 정비 안된 상황이 함께 진행됐다. 집 없는 사람과 집있는 사람 사이의 갑을 관계는 그런 갑을 관계도 없다. 집 없는 설움이 같이 엄습한 것이다. 그 설움이 함께 겹치면서, 온 국민이 청약 통장에 가입할 정도로 성인 한국인에 내집 마련이 집단적 소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런 주택 정책의 산물인 불패신화 수단이 아파트가 됐고, 이것은 말씀하신대로, 집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40년간 진행됐다. 40년 간 불패신화 산물이 아파트다.

박인석= 좀 더 구조적으로 보면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가 문제다. 경제학에서의 조절이론에 따르면 아파트 단지는 한국 경제의 조절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 성장, 즉 한국자본주의 축적체제가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제를 잠재워준 기제가 바로 아파트 단지였다. 한국이 압축 성장했다는 것은 소득과 경제규모가 급격히 커졌다는 것이다. 당연히 중산층이 성장한다. 중산층의 성장은 모든 부문의 수요에서 욕구 수준이 높아지는 현상을 낳는다. 당연히 주거환경에 대한 욕구 수준도 높아진다. 그러나 수출 경제에 총력을 기울이던 한국 정부는 중산층을 위시한 시민들의 생활공간환경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공간환경 뿐 아니라 복지 제도도 낙후된 채 방치하였는데, 좋게 말하면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경제규모가 커지고 중산층이 성장하여 주거환경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고 커졌지만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도시 공간환경은 저열한 상태로 방치되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가 취한 전략이 단지화 전략이다. 공공이 투자해야 마땅한, 예를 들어 도로, 녹지, 노인정, 어린이집, 놀이터 같은 인프라를 아파트 단지로 만들어서 판매하고 이를 시민들이 자기 돈 내서 구입하도록 하는 정책을 편 것이다. 중산층의 환경 욕구의 눈높이를 충족하고 보장해주는 집은 달리 없다. 그런 눈높이를 맞출만한 집은 평창동, 성북동 등 일부 괜찮은 자연환경을 향유하는 지역에서나 찾을 수 있었는데, 제일 먼저 부자들이 차지했다. 중산층은 너무 비싸 엄두를 못 낸다. 그 다음 선택할 수 있는 건 아파트 단지뿐이다. 중산층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평생 매달 소득의 몇 십 %를 저축하면서 구입 대열에 들어서는 수밖에 없다. 온 국민이 평생을 저축하며 아파트 마련에 힘쓰고 국가는 공공투자 없이 국민들의 생활공간 인프라 공급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어느 사회학자는 아파트가 자칫 반정부적 성향이 될 수 도 있던 중산층의 불만을 해소하고, 보수 성향으로 만드는 기능을 했다고 분석했는데, 타당하다고 본다. 단,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가 그 역할을 했다고 해야 한다. 단지가 그 환경을 보장한 것이다. 개인의 돈으로 인프라를 구입하게 만들고, 건설산업에도 주요한 먹거리를 만들어 개발경제의 한 축인 건설산업을 키우는 역할까지 했다. 아파트 단지 없이 대한민국 사회가 있었을까 싶다. 아파트 단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는 불가능했다고 본다. 국민들의 주거환경 욕구를 달래주지 않고 사회가 존속할 수 있었겠나. 나는 아파트 단지를 대한민국의 생명줄이라고까지 말하는데, 그것 없이는 대한민국 사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얘기다.

박인석 교수의 < 아파트와 한국사회 > , 박철수 교수의 < 아파트 > 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사진은 서울 성북구와 강북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지난 23일 서울 8개구의 아파트 전셋값이 매매가의 60%를 넘어섰다. 매매와 부동산 상승 기대 심리 위축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항공촬영 김정근기자

박철수=우스개 소리 하나 하겠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에 대해 긍정적 발언을 하면, 한국 언론이 이를 매번 실어 나른다. 그런데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제도 무엇에 대해 칭송했는지 이야기가 없다. 바로 이런 거다. 미국 공교육은 지금 많은 돈을 투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한국 부모들처럼 자기가 번 돈으로 자식들에게 사교육 시켜서 훌륭한 인재를 만들라는 게, 오바마의 진실한 생각이라고 본다. 대한민국 교육체제가 그리 좋으면 미국 애들이 한국에 유학 와야지.(웃음), 미국 아이들은 조기 유학 안 오고, 미국 대통령이 나쁜 교육이라고 규정하는 미국에 유학을 간다? 이해할 수가 없다. 아파트 단지와 엮어 이야기하면, 바로 아파트는 한국의 각개약진 싸움을 잘 보여준다. 한국은 공적 기관, 공적 주체, 공공에 대해서는 신뢰가 없다. 지금 중고생들이 사설 학원 선생 말을 더 잘 듣는다. 학교는 공적인 교육의 주체인데, 신뢰의 대상이 아니다. 내 수능점수 1점을 더 올리는데, 사설 학원선생이 더 큰 역할을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공적인 부분은 불신하고, 사적인 부분엔 정열을 갖고 있다. 전북대의 강준만 교수가 < 한국인 코드 > 에 이런 사례를 많이 써놨다. 공적 불신, 사적 신뢰의 사회 즉 한국인은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판치는 성향 갖고 있다고. 그게 잘 드러나는 게 아파트 단지다. 박인석 교수 이야기했듯이 단지는 내 돈 주고 산 인프라다. 그것은 철저히 신뢰하고, 담장 밖 사회는 관심 밖에 둔 채 신뢰하지 않는다. 중고교 공교육도 신뢰하지 않고, 사살학원을 신뢰하니까 서울 지역에 대치동, 목동, 중계동이니 하는 학원 트라이앵글 생긴 것이다. 이것들이 우리 사회의 여러 부문에 내면화되면서 지속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연금보험에 들라고 한다. 공적 복지 제도가 열악하니까 모두 노후를 불안해한다. 돈벌이가 있을 때 저축해서 퇴직 이후에 최소한의 경제활동을 하려면 많은 부분을 부어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공적인 서비스, 공적인 정책에 대한 신뢰가 땅 바닥에 있다. 아파트 단지는 공공이 제공해야 할 모든 시설을 내 돈 주고 구입하는 것이다. 구입한 다음 바로 담장 둘러치고, 차단기 막아서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정부가 주택보급률 높였다고 믿는데, 사실상 정부는 자랑할 게 아무 것도 없다고 해야 옳다. 우리 스스로 벌어서 스스로 생활할 환경을 구입한 거다.

#1960~70년대 남북 아파트 경쟁

손낙구=불패 신화 수단이 왜 아파트가 되었는지는 종합적 관찰과 설명 필요할 거 같다. 한국형 아파트는, 단지의 개념을 빼고 설명하기 어렵다. 단지화가 정부가 공적인 역할을 포기하면서, 그 역할을 사적인 영역에서 맡겼다는 것은 훌륭한 관찰이라고 본다. 다르게 생각한 건, 상싱적 이야기지만, 아파트의 자기 진화라고 해야 할까. 한국에 와서, 한국에 맞게 발전한 것들이 있다. 현대적인 편리함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면들이다. 고층으로 올라가게 된 것은 기술적인 면도 반영됐다. 전기요금 하고도 관련 있을 거라고 본다. 엘리베이터 작동이 가능해야 하니까, 1970~80년대 이런 기술적 측면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리라 본다.

북한도 평양 중심으로 아파트가 발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남북이 공히 희한하게도, 아파트를 대표 선수로 내세웠다. 아파트가 한반도에 와서 성장하게 된 것은 남북관계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웃음)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꼽히는 마포아파트는 '단지'로 또 '1년 임대 후 분양'으로 시작했다.

박철수= 사회주의 주택이란 게 다 아파트죠. 특히 동구권가면 다 아파트다. 재밌는 게 떠올랐는데 1962년, 박정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국가재건최고위 의장일 때 마포 아파트 준공식 치사를 통해 군사혁명을 생활혁명으로 바꿔야 하고, 생활혁명은 집단생활 공고히 하는 고층아파트여야 하고, 아파트를 통해 혁명한국의 상징을 드러내자고 한 적이 있다. 1960년대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할 때, 평양은 사회주의 국가들이 채택한 아파트들이 높이 들어서 있었다. 그런데 남한은 우뚝 서 장엄한 모습을 연출하는 아파트가 없었다. 그래서 대한주택공사가 마포아파트 짓자고 할 때 11층으로 올리려고 한 것이다. 혁명한국의 상징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잘 살피면 남북 양 진영이 모두 공간 정치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아마도 대한민국 중년은 다 기억할 듯한데, 극장에 애국가 나올 때 3,1일 빌딩 등장하고, 고가도로가 와이자로 갈라지는 걸 본 게 그런 (공간정치의) 산물이다.

손낙구=1950~60년대 남북한 사료를 보면, 남북한이 동시에 아파트의 온돌 개량 문제가 제기된다. 기술적으로 아파트가 자리 잡기 힘든 과정을 동시에 남북이 겪는다. 평양이 폐허를 복구하면서 소련식 아파트가 올라갔는데, 할머니들이 못살겠다고 했다. (몸을 구들에) 지져야 했기 때문이다.(웃음) 김일성 주석이 현지 지도를 하면서 난로식 온돌을 개량하라고 지시했다. 고구려 때 전해 내려온 전통 온돌에 소련식 아파트를 결합한 것이다. 남한에서는 미국식 아파트가 들어왔는데, 새마을 보일러 즉 연탄 보일러를 만났다. 1970년대 서울과 평양이 양 체제의 쇼윈도 역할을 하면서 고층 경쟁, 건축 경쟁이 붙었는데, 이에 대한 분석도 더 필요한 것 같다. 양쪽이 세종문화회관, 인민문화궁전을 경쟁적으로 지었다. 남북이 고층아파트로 주택 유형을 결정한 것도 분석되어야 할 부분이다. 최근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 끝나고 나아졌다고 하는 표상이 평양 아파트를 정비하고 색칠하고 이런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단지가 문제...공공성 아닌 집단이익 추구로 민주·평등화 제약

박인석=체제 간 경쟁, 정치적, 상징적 요인도 있겠지만, 1962년 들어선 마포 아파트 단지 자체의 성격과 의미도 짚어봐야 한다. 마포 아파트 단지에선 지금의 아파트 단지를 대표하는 성격을 읽어야 한다. 박정희는 서양에서 본 고층아파트를 표상, 모델로 하자고 했을 것이다. 원래 11층으로 지으려다가 기술적 문제로 6층으로 깎아 내린 에피소드도 있다. 그런데 서양의 아파트는, 아시겠지만, 퍼블릭 하우징으로 출발한다. 단지로 지어도 공공단지로 시작하였다. 마포아파트 단지는 형무소 자리에 지었는데, 이것부터 의미심장하다. 단지를 담장으로 둘러쳤다. 그리고 '1년 임대 후 분양'을 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분양단지로 만들었다. 이건 임대 아파트가 아니다. 서구적 의미의 퍼블릭 하우징, 즉 공공임대주택이 등장한 것은 1990년 노태우 때 영구임대 아파트다. 처음에는 '임대 아파트'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이상하게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임대 아파트'라고 해온 '1년 임대 후 분양 아파트'와 구별이 안되는 거다. 그래서 앞에다 '영구'를 붙여야만 했던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로써 한국사회에서도 진정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이 시작된 셈인데, 이미 시장 판매용 아파트 단지의 주거형식, 도시개발형식이 고착화된 이후라 주거문화에 큰 영향을 못 끼쳤다. 서구의 아파트가 임대주택이라면, 한국은 분양 아파트단지로 시작했다. 시민으로 하여금 인프라를 사게 한 것이다. 시작을 그렇게 했고 그게 지금까지 계속되는 거다. 본질적 차이가 있다. 외양만 같다고 해서 같은 아파트는 아닌 것이다.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 문제는 여러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어느 사회든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는 있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것이 비민주적, 계층 편중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권력과 지배 이데올로기를 민주화, 평등화, 시민화하는 일이 쟁점이 되고 과제가 된다. 가장 중요한 쟁점은 이를 어떤 힘으로 추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결국 시민 개개인의 자율성에 바탕한 여론, 즉 시민의 힘이 필요한 일이고, 이는 시민들의 의사소통과 공론장인 공공영역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지점에 아파트 단지와 단지화 전략의 문제가 있다. 아파트 단지로 가득 찬 채 공공공간이 부족한 현재의 도시 공간은 한국사회의 권력을 민주화, 평등화하는 힘을 제약해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각에서 아파트 공동체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아파트 단지는 공동체라기보다는 결사체라 불러야 한다고 본다. 자기들 안의 공동체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들의 결사체적 이익으로 귀결되는 것은 대부분 시민사회 일반의 공통이해와 상충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단지 옆에 장애인 학교를 짓는 것을 반대하는 데 똘똘 뭉친다. 이게 결사체라는 거다. 공동체라면, 이타주의적인 것을 깔고 있어야 한다. 아파트 단지는 공간구조 자체가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소통하고 공동체 의식을 일궈가는 것을 제약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박철수=대한민국 아파트는 공급 당시부터 기본적으로 결혼한 단순 핵가족을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다. 할머니방, 할아버지방을 계획하는 게 아니라 부부침실, 자녀방 1, 2를 구성한다. 결혼하지 않은 이들, 자녀 없는 이들은 아파트 공급대상에서 제외한다. 최근 바뀐 게 생애최초주택이니 하는 것들이다. 또 경제 계층과 아파트 규모의 비례성을 따지는 문화다. 손낙구 선생한테 몇평 삽니까 물어봐서, 42평 삽니다 그러면 적절히 사셨다. 제가 55살인데 22평 살면 사회경제적으로 성취하지 못한 경우로 취급받는다. 경제 계층이 아파트와 비례관계 갖는다. 끼리끼리 집단이 만들어진다. 다채로운 평형은 도외시된다. 대형평형의 집중은 곧 경제 권력의 집중이다. 소규모 평형과 중대형 평형이 섞이는 걸 한 단지 안에서 반대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익결사체 같은 것이다. 두 개의 평형이 한 단지에 들어서더라도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이들의 경계를 나눈다. 용적률 증가분에 대한 법적 강제조치로 인해 임대주택이 강제로 들어가면 별도의 주민공동시설, 주차장을 갖도록 구분한다. 이런 공간구조가 곧 사회를 구분한다. 규모가 공간을 구획, 제약하는 사회에서는 당연히 민주성을 찾아볼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행복주택이란 시범사업 7개 대상지 발표하자마자 각지에서 행복주택이 들어와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는 현수막을 걸었다. 나와 다른 경제 계층이 들어오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자기가 실질적으로 경제계층 어디에 속하는지 모르면서 대부분이 스스로 중산층임을 자인하는 나라다.

손낙구=수도권 1186개 동네의 특성과 투표 상관 관계를 분석해 책 낸 적이 있다. 집주인이 많은 동네일수록 .아파트 거주가구 많을수록 투표율이 높고, 한나라당 지지율 높게 나온다는 내용이었다. 아파트는 불패신화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오를 줄만 아는 주택인 거였다. 그동안 이 신화를 배반하지 않고 계속 올라왔다. 만약 아파트 가격이 오르지 않거나, 자동차나 다른 상품처럼 쓸수록 값이 떨어지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변하면, 아파트 미래는 알 수 없다. 그러니까 지금의 아파트는 오른다는 전제 아래 자리 잡은 바벨탑같은 거다. 한국은 아파트를 분양받기 전과 후로 인생이 바뀐다. 국민은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과 분양받지 못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렇게 국민이 나뉘는 상황에서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계속 그 아파트 가격을 올려줄 정치세력을 선택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선택받은 권력은 아파트값을 계속 올려주는 정책을 펴서 보답을 한다. 아파트를 매개로 해서, 중산층과 권력이 소통한 40년이 한국 민주주의의 이면이라면 이면인 것 같다. 1987년 체제 들어선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의 전진과 달리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답보 상태에 있는 것은 한국 중산층이 아파트를 매개로 보수적인 정치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박철수=어떤 학자는 지난 대선도 아파트 중심으로 본다. 그래서 아파트를 통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중산층 반열에 들어왔다고 믿는 자는 그렇지 않은 자와 지지 세력이 다르다. 이 사회의 개인이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물성화 되어 있는 것이다. 아파트를 가진 자냐 아닌 자냐, 또 부를 획득한 자냐 아니냐에 따라서 자기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게 한국 사회의 또 다른 단면이다.

박인석=아파트만 그런가라는 걸 따져봐야 한다. 다른 사회에는 주택 계층이 없는가. 당연히 있다. 어떤 사회든 아파트든 아니든 100% 공공임대주택이 아닌 한, 주택은 재산이기 마련이다. 주택이 계층으로 나뉘는 건 상식이다. 부자 동네와 가난한 동네로 나뉘고, 한 동네에서 부자집, 가난한 집으로 나뉘는 건 어느 사회나 있기 마련이다. 아파트이든 단독주택이든 자연스런 현상이다. 부자 동네 투표율 높은 것도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다. 이것도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를 문제로 보아야 풀리는 문제다. 프랑스 파리 시내에 보이는 6층 건물 상당수가 아파트다. 공공공간에 기대어 서 있는, 시가지 주택이다. 시가지주택이나 단독주택은 공공공간에 접속돼 있다. 이들 주택 거주자들은 공공공간의 환경에 항상 신경 쓴다. 쓰레기를 왜 제때 안 갖고 가냐, 도로청소 왜 안하냐, 염화칼슘 왜 안 뿌리냐, 불법주차 왜 단속 안 하냐를 따진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는 내 상황만 신경 쓴다.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해서 자체 해결한다. 바깥 세계는 자기 세상이 아닌 것이다. 공공 영역에 관심을 덜 갖게 된다. 한국도 프랑스처럼 시가지 주택 형태로 아파트가 들어섰다면, 평형별로 단지가 구분되는 것도 희석될 수밖에 없다. 아파트가 다가구 주택, 연립주택과 자연스럽게 섞일 수밖에 없다. 단지로 짓기 때문에 아파트와 일반 주거지가 따로 형성된다. 서양은 아파트가 대부분 도시공간에 직접 면해서 섞여 있어서 아파트만 따로 집단화해 분석 대상으로 삼을 수도 없다. 이런 아파트라면 많다고 해도 문제가 안된다. 한국은 아파트 단지라서 문제인 것이다. 단지 개발 방식도 문제다. 블록별로 단지를 나눈 뒤에 LH가 개발하는 단지는 전용면적 60제곱미터 이하로 짓는다. 민간에게 분양해서 쌍용이니 프루지오니 래미안이 들어오게 하는 블록은 85제곱미터 이상으로 짓게 한다. 민간에겐 장사 잘되는 큰 평수로 짓게 해주는 것이다. 자연히 블록별로 아파트 평형이 구분된다. 이것이 아파트를 특정한 계층의 거주지로 만들고, 중간계층 이상의 주거를 공간적으로 집단화하는 결과를 만들어버렸다. 의도했든 안했든 동네의 구별로 나타나고, 투표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차이를 생기게 한 것이다.

#프랑스 파리 아파트는 대부분 나홀로 아파트…한국은 공공예산 줄이려 나홀로 아파트 철천지 원수처럼 만들어

박철수=최근 새로 펴낸 책에서 나홀로 아파트 변명을 했다. 그동안 나홀로 아파트는 철천지원수처럼, 도시의 흉물처럼 보아야 한다는 것이 관례화 되었다. 나홀로 아파트가 죄인인가. 파리의 길거리 주택, 바르셀로나의 길거리를 가득 채운 나지막한 주택들이 나홀로 주상복합 아파트다. 나홀로 아파트가 비난받는 이면에는 정부의 교묘한 전략이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나홀로 아파트는 들어서는 순간 주변 공공공간과 접하게 된다. 주변에 부하를 일으킨다. 예를 들어, 공공공간에 인터넷도 깔아야한다. 안 해 주면 왜 안 해주냐고 항의가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단지는 깔끔하게 자기 돈으로 해결한다. 정부 입장에선 예산이 많이 드는 방식이 나홀로 아파트인 것이다. 그래서 언론 통해서 나홀로가 문제다 하고, 열을 올리며 마치 죄인다루듯 하면서 짓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홀로 아파트는 문제인양 취급하고, 단지로 가면 안락하고 자족적이라고 선전한다. 나홀로 아파트는 공간구조로 보면, 단독주택과 같다. 경향신문사 근처 정동 아파트가 나홀로 아파트다. 문을 열면 길거리에 사람들이 지나가고, 1층 첫면의 건축 사무소는 유리 윈도에 건물 모형을 전시한다. 건축설계사무소라는 걸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게 바로 가로의 풍경을 만드는 것이다. 홍대 앞이나 가로수길에 젊은이들 많이 다니는 게 사적 생활을 공적 공간에 드러내기 때문에 다니는 이들에게 흥미로운 풍경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아파트 단지는 방음벽 밖에 없다. 그 차이를 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의 일상공간이 민주적인 공간으로 갈지 폐쇄적이고 독단적인 공간으로 갈지 가늠할 수 있는 것이 곧 단지의 해체이고 길의 회복인 것이다.

박철수 교수는 한국의 나홀로 아파트가 죄인 취급 받고 있다고 말한다. 정부가 공공공간에 대한 예산 투입을 안하려는 꼼수로 나홀로 아파트를 죄인 다루듯 한다는 말이다. 사진은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부근의 나홀로아파트인 '정동아파트'. 아파트 1층은 현관은 바로 보행도로와 닿아 있다. 1층 건축설계사무소는 쇼윈도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존재를 알린다. 아파트단지를 해체해 이런 가로의 풍경을 만드는 것은 곧 민주성의 쟁취라고 박 교수는 말했다. 김종목기자

손낙구=아파트 역사는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딱한 처지의 가난한 노동자를 위한 공공주택으로 출발한 임대주택이었다. 착한집이었다. 죄없는 아파트가 한국에 와서 고생하고 있다.(웃음) 단지를 경계로 공적인 공간이 무너지고, 사적 공간만 각자가 책임지게 됐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이웃이 없는 것도 한국적 현상이다. 아파트라는 죄 없는 주택 형태가 한국의 독특한 임대차 시장를 만나 만들어진 풍속도가 아닌가 싶다. 통계를 보면, 최근 10년 동안 900만명이 주소지를 옮겼다. 단순히 이야기하면, 국민이 5년에 한번씩 이사를 갔다. 집을 옮기고, 동네를 바꾸고 하는 건데, 셋방 사는 사람들은 이사를 더 다녔을 것이다. 전체 가구 절반 정도가 5년안에 이사한다. 셋방 사는 사람의 4분의 3이 5년 안에 이사하는 셈이다. 집 있는 사람도 그렇지만, 집 없는 사람은 자기 동네가 자기 동네가 아니고, 이웃도 스치고 헤어져야 할 존재에 불과하다. 부동산 불패 신화는 한국 사회를 40년 동안 휘감았던 동시에 한국인을 농경민에서 유목민으로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택형태뿐만 아니라 주택임대차 제도도 이 각도에서 모색해야 한다.

박인석=임대차제도라는 문제는 공간문제하고 연동될 수밖에 없다. 사회문제와 공간문제는 서로에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웃이 죽어나가도 모르고, 3년이 멀다 하고 이사가는 현상에는 소속감 결여나 경제적 요인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안 생활공간에서도 문제들이 불거진다. 특징적 문제를 하나 보면, 준사적 공간을 들 수 있다. 사적 공간이면서 남에게 시각적으로 노출되는 공간을 말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발코니다. 한국 아파트는 이 발코니를 샤시로 막아 안 보이게 한다. 우리나라 모든 아파트에 가장 부족한 것이 이런 준사적 공간이다. 현관은 철문으로, 발코니는 샤시로 막혀 있다. 요즘에는 발코니 확장을 합법화해버려서 발코니 자체가 없어졌다. 개인들의 생활을 드러내 보여주는 공간이 없다. 단독주택 동네는 옆집에서 뭐하는지 보인다. 서로 간섭할 일이 생긴다. 이 꽃은 어디서 샀어요, 얼마주고 샀어요, 등등. 아파트는 서로 다른 것을 볼 수 없으니 이야기할 게 없다. 201호, 202호 표시 차이 밖에 없다. 개인의 삶의 차이를 보여주는 게 없다. 이것이 임대차제도와 관계가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분양으로, 사적 개인 재산으로 시작한 반면에 서양 아파트는 노동자들의 공공임대주택으로 시작했다. 공유재산이기 때문에 주거공간 사용 규범이 상대적으로 철저했다. 발코니를 샤시로 막아서 쓰는 건 있을 수 없다. 지금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코니는 공공공간으로 다루어진다. 분양아파트라도 그 사회적 규범은 마찬가지라서 함부로 개조하면 큰일난다. 국가에 따라서는 이상한 빨래를 널어도 규제하는 경우도 있다. 공공에게 시각적으로 노출되는 공공성이 큰 공간이라서 그렇다. 개인에게 전용권을 주되 사용형태를 규약하는 것이다. 발코니는 노출된 형태 그대로 둬야 한다. 우리나라는 재산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다. 사유재산에 왜 감 놔라, 콩 놔라 하냐는 식이다. 샤시 불법 공간 개조가 판치더니, 온 국민을 범죄자로 몰 수 없다며 결국 합법화하였다. 자기 전용면적을 극대화하려고 꽁꽁 막아서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개인마다의 생활의 차이를 표출하는 공간이 사라져버렸다. 설계단계부터 문제다. 이런 공간을 설계하려고 해도, 이런 낭비 공간 만들지 마라, 대신 방 크게 만들라고 한다. 현관 앞에 마당공간을 만드는 설계의 목적도 개인의 생활 차이를 표출할 수 있는 여지를 주려는 거다. 이 공간에 화분 내놓고 물주다가 만나고, 그게 공동체의 시작이다. 이런 게 우리 아파트에는 없다. 분양이나 임대하고 관계 있는 현상이다.

박철수= 일본의 복도형 아파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복도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별도의 세대진입 다리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통로공간인 복도와 각 세대의 방이 바로 붙어 있는 구조이므로 차이가 있다. 우리의 복도식 아파트에 면한 모든 방에는 쇠창살을 덧댄다. 복도에서 다리를 지나 현관에 다다르는 일본의 경우는 당연히 방범용 쇠창살을 안 한다. 현관과 복도 사이에 조그만 다리를 놓는 식으로 해놓고, 나머지 공간은 비어둔다. 이처럼 공용공간을 아주 조금만 할애해도 전혀 다른 풍경이나 생활이 드러나지만 우리의 경우는 남과 더불어 쓰는 공용공간에 대해서는 철저하리만치 야박하다. 그러면서 다들 아파트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웃음)

손낙구=그 설계를 재벌이 하는데... (웃음_)

박철수=공용공간을 적게 할애하는 방법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니 공간 윤리의식도 이미 바닥에 머물고 있다. 일례로, 아파트 발코니를 확장하면 불법이었다. 어제 불법이었던 일이 다음날부터는 합법으로 돌변하기 때문에 공적 불신이 싹트는 것이다. 기다려봐, 곧 바뀔 것이야 라는 불신의 관성이 사회의 통념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시마다 주정차 금지 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어느날 갑자기 잡히면 재수가 없는 것이지,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다. 공공의 관리 능력 없는데, 과도한 규제를 해서 공적 불신의 한계를 초래하기도 한다. 아파트에 적나라하게 많다. 애완견 기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공공주택에선 기를 수 없다. 주민 동의와 구청 신고가 필요하다. 그걸 하는 주민들은 없다. 누구도 애완견 기르는 것을 규약 위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에서 중국음식 배달시켜 자장면 먹고 비닐에 넣어서 문밖에 내어놓는다. 공공과 거래하지 않는다. 배달 음식 하는 친구와 접촉할 일 없다. 사실 배달 음식을 내놓는 그 자리는 공공공간이다. 이웃과 더불어 함께 쓰고, 비상시 탈출하기 위한 공간이다. 외국 여행갈 때마다 느끼는 건데 그들은 꽃 화분을 내놓기 위해서 산다. 남들도 볼 수 있게 창틀에 놓는다. 우리는 화분을 나만, 우리 가족만 보기 위해 산다. 그들이 대단한 민족 나라라는 건 아닌데, 우리 사회가 오래 학습한 규율이 어떻게 정착됐는가 하는 문제가 여기 있다. 나와 내 가족. 사유재산, 공적인 불신으로 집약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인 배려라는 게 깔려 있기 때문에 길을 만들고, 집을 꾸미는 게 다르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태생적으로 분양주택이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표식을 달고 있다. 브랜드며 평수며 어디 사느냐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제일 중요한 건, 주거 취약계층이 어느 사회나 존재하지만, 이들을 위한 주택, 즉 퍼블릭 임대주택을 해본 적 없는 지난 반세기에 대해서는 정부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공공임대주택 부분을 적극 높이는데 나서야 한다. 그래야 더불어사는 사회를 성취할 수 있다. 둘째, 소위 거대건설 재벌이라는 게 부동산 불패 신화가 끝나간다는 걸 자각하고 스스로 만들어내는 집들을 바꾸어야 하죠. 단지 방식 벗어나야 한다. 단지를 해체해서 도시 가로주택 만드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단지 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민주성을 쟁취하는 것이기도 하다.

손낙구 보좌관, 박인석 교수, 박철수 교수(왼쪽부터)가 23일 오전 대담에 앞서 서울 종로구 홍파동 골목길에서 아파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골목길 너머 산을 깎아 만든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김문석 기자 kmsek@kyunghyang.com

박인석=아파트를 부동산 문제로 연결할 때 두 가지 점을 항상 주의해야 한다고 보는데, 하나는 단지 속 아파트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아파트만 비판해선 문제해결 안된다. 아파트 비판하면 흔히 돌아오는 항변 중 하나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 이 많은 주택을 단독주택으로 다 지으라는 말이냐, 아파트가 불가피하지 않느냐"고들 한다. 아파트를 짓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로 만들지 말라는 거다. 공공공간과 결속된 생활공간을 만들라는 거다. 다른 하나는, 어느 사회나 있는 주택 문제를 아파트의 문제로 섞어서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이 부족한 문제는 어느 나라든 있다. 아파트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것을 아파트 문제로 얘기하면 초점이 흐려진다. 그 문제는 그 문제대로 중차대하고 해결노력이 필요한 문제다. 모든 문제가 아파트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오히려 그 문제의 심각성을 흐려 버리는 우를 범하게 한다.

#집값 떨어질 때 투기 잡을 수 있어…건설 부양책 등 쓰면 도루묵 가능성

아파트 단지 문제에 대한 대안이랄까, 방향이라면, 공공공간에 기대어 소통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요구가 곧 공공의 요구로 표출되고, 시민의 공통 이해로 결집될 수 있는 그런 생활공간 구조를 확산시키는 게 중요하다.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과제 역시 으레 임대아파트단지를 생각하는데, 이래서는 곤란하다. 임대아파트 단지를 따로 만드는 게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을 단독주택지 여기저기에 게릴라 방식으로 만드는 정책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다가구주택 매입 사업도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정책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게 문제다. 양념 정도로 생각할 뿐 주력 정책으로 삼지 않고 있다. 다가구주택을 매입해서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일을 늘려야 할 뿐 아니라, 그걸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작은도서관 같은 생활인프라 시설로 만드는 정책도 필요하다. 행복주택 한다고 철도 위에다 아파트 단지 만드는 이상한 짓을 할 것이 아니라 모든 주거지역에 임대주택과 생활인프라를 늘려 나가는 일을 주력사업으로 펼쳐야 한다.

손낙구= 아파트로 상징화된 한국의 집 문제는 투기하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다. 앞으로도 투기 문제, 집값 폭등하는 거 해결하지 못하면, 집문제 해결은 불가능, 40년 동안 부동산 정책 돌아보면, 집값이 떨어질 때 잘해야 투기 문제 해결한다. 김대중 정부 때. 외환위기 집값 떨어지는 꼴 못 보고, 투기 규제책을 풀었다. 경기 부양책 쓰면서 도루묵 되었다. 투자위기, 집갑 떨어질 때 잘 관리해야 한다. 한국의 집 문제 이정표 세운다는 이런 관점으로 부동산 문제를 대 수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공공임대주택도 땅값이 떨어지지 않으면 의도한 방향으로 할 수가 없다. 너무 비싸서 공급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아파트가 부의 계층화, 빈부격차 상징인 것을 해결하기 어려운 점 보면 부동산 가격의 조정기에 이 문제 올바른 해결을 시도해야 한다. 전화위복의 계기로 생각하면 된다. 주택유형 다양화나 더 나은 설계, 이웃과 이웃 더불어 사는 방식의 설계가 가능하다고 본다. 정리

<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