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영화

셔터 아일랜드 (Shutter Island)

언러브드 2011. 2. 21. 19:28

 

시작하며..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가끔 자연스레 주위의 반응을 살펴보곤 할 때가 있는데, 그 찰나의 분위기가 내 주위의 다른 이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고 느꼈는지 대충 감이 오게 해 줄 때가 많다. 오늘 이 <셔터 아일랜드>란 영화를 같이 본 내 주위의 분위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허탈하다'쯤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나중에 인터넷으로 평점과 리뷰를 대충 훑어보니 이 영화에 호의적이지 않은 분들이 꽤나 적지 않은 듯 싶다.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고 그거야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니까 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2시간 20분 동안 이 영화에 푹 빠져서 재미있게 본 개인적인 입장에서 그냥 이 영화가 그렇게 형편없는 영화는 아니다라는 소심한 항변과 더불어 다소 복잡하게 느껴지는 내용을 그냥 한 번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에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더라는...

 

반전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누군가 그러더라. 반전영화를 가장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아예 처음부터 반전이라는 거 자체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보는 거라고.. 반전영화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식스센스'와 '유주얼 서스팩트'를 한참이나 뒤늦게 봤으면서도 운좋게도 반전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봤다가 제대로 뒷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의 묘미를 만끽한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반전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고, 그 반전이라는 '나무'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영화 전체의 '큰 숲'의 매력을 제대로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굳이 서두에 이런 사족을 붙이는 것은 어쩌면 이 '셔터 아일랜드'라는 영화에서 반전이라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환상 속의 자아의 모호한 경계

 

이 영화의 모든 장면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가 있고, 전체적으로 음산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 가지 장면들이 시간순서와 상관없이 어지럽게 교차편집이 되어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건 바로 주인공인 테디의 과거와 주인공이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자아의 모습, 그리고 현실의 모습이다.

 

첫째, 테디의 과거 (주로 회상씬으로 보여지는 장면들) 

→ 전쟁(2차 세계대전으로 추정)에 참전한 군인이었음.

나치의 억압 아래 생체실험용으로 쓰이다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목도하게 되고, 직접 전쟁포로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는데도 가담하게 된다.

전쟁이 끝난 후 보안관이 되었고 조울증이 걸린 아내를 그대로 방치한 끝에 결과적으로 아내가 아이들을 죽이는 것을 방조한 게 되고 말았다. 아내에 대한 애증 속에 결국 아내를 살해.

정신병 판정을 받고 셔터 아일랜드의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둘째, 테디가 환상 속에 만들어낸 자아로 활동하는 모습. 

→영화 초,중반의 대부분의 장면이고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장면.

테디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셔터 아일랜드에 온 보안관으로 설정된 모든 장면.

(이 때 가끔씩 과거의 기억들이 악몽으로 등장)

 

셋째, 테디의 현실 속의 모습

→영화 결말 부분에 나오는 정신병자의 모습.

 

 

테디가 환상 속에서 이중적인 자아를 만들어낸 이유는..

 

실제 2년 전부터 셔터 아일랜드에 정신병으로 수감중인 (전직) 보안관 테디는 환상 속에서 가상의 실종사건을 만들어 낸 후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셔터 아일랜드를 방문하게 되는 (현직) 보안관을 자신으로 설정하게 되고 그것을 현실로 합리화하기 위해 끝없이 자신을 강박한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고,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으며, 스스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트라우마' 때문이다.

(트라우마란? 사전적인 의미로, 정신적 충격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원인)

 

이에 관해 복선이라면 복선이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첫번째는 독일인 출신의 늙은 박사가 테디와 첫 대면한 자리에서 테디에게 트라우마가 많고 그에 대한 방어기제가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장면이고, 두번째는 코리박사가 첫 현장검증할 때 테디에게 여기에 수감되어 있는 정신병자들은 대부분 환각 증세에 빠져 있고 현실을 부정하며 환상을 믿는다고 얘기해 주는 장면이다.

 

그럼, 테디를 괴롭히는 트라우마, 그러니까 즉 '정신적인 상처'는 무엇인가.

 

그건 바로 '죄책감'이다.

전쟁 속에서 무차별하게 사람을 죽였던 것에 대한 죄책감, 나치의 억압 속에 수용소에서 실험용 생쥐로 쓰여지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좀 더 일찍 구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조울증에 걸린 아내를 방치함으로써 아이들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 그리고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

 

이런 과거의 기억들 속의 죄책감들이 한데 엉켜 트라우마가 되어 현재의 테디를 괴롭히는 것이다.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어기제로써 현실을 부정해야만 하고,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자아를 만들고 그 자아를 현실 속의 자아로 합리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이 자꾸 환상 속의 자아와 충돌하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이 과거의 기억이 꿈이나 환영으로 나타나 환상 속의 자아를 괴롭히는 장면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테디는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환상 속에서 아내를 죽인 가상의 방화범을 만들어냈는데, 꿈에서 나타난 아내는 범인이 바로 이 곳에 있고 자신은 테디를 떠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거다. (바꿔 말하자면 범인이 바로 테디 자신이고, 테디 때문에 아내가 주인공 곁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는거다)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환상 속의 자신은 아예 아이들이 없다고 설정을 해놨는데, 꿈에서는 자꾸만 아이들이 나타나 왜 자신을 구해주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두었느냐고 테디를 원망하고, 전쟁 속에 죽어간 아이들과 자신의 아이들이 오버랩되어 나타나기까지 하는거다.

 

정리하자면 테디가 만들어낸 환상 속의 자아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는 실제인 것처럼 보여지고, 환상 속의 자아가 꿈을 꾸며 괴로워하는 장면들은 과거의 기억이 환상 속의 자아와 충돌하면서 애써 합리화하고 있는 환상 속의 자아의 근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환상 속의 자아가 꾸는 꿈(과거의 기억과의 만남)은 늘 악몽이 될 수 밖에 없는거다.

재밌지 않은가? 꿈 속에서 꾸는 꿈이 실제의 기억이라는 것이....

 

테디가 만들어낸 환상 속의 자아의 근거..

 

자아라는 게 무엇인가? 

한 마디로 '나는 누구이고 여기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변이다.

자, 테디는 실제 정신병원에서 과거의 기억에 대한 죄책감으로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정신병자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어기제는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는 길 밖에 없다.

그래서 가상의 나를 만들어내고, 그 가상의 나를 현실이라고 믿기 위해서 스스로 근거를 만들고 합리화하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 즉 거짓을 믿기 위해서는 그 거짓을 합리화할 수 있는 또다른 거짓들을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서 잠깐 환상 속 테디의 자아가 가상의 동료인 척에게 한 얘기들을 통해서 환상 속의 자아가 셔터 아일랜드를 방문한 목적을 다시 한 번 꼭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그 목적은..

 

첫째, 보안관으로써 실종자를 찾고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둘째, 셔터 아일랜드에 있다는 '아내를 죽인 연쇄방화범'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셋째, 정신병자의 폭력성을 제거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뇌수술의 실체를 밝히고 그것을 막기 위해서,

 

크게 이렇게 세 가지였다.

이 세 가지를 가만히 보면, 이것들은 테디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의 자아가 현실이라고 합리화하는 가장 절대적인 근거들과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자신이 정신병자가 아니라 여전히 보안관이라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가 바로 첫번째 방문 목적에 있고,

아내를 죽인 건 내가 아니라는 것을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가 바로 두번째 방문 목적에 있으며,

셔터 아일랜드에서 자신의 환상을 깨고 현실을 일깨워주려는 주위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폭력을 휘두른 자신이 곧 받게 될지도 모를 뇌수술의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근거가 바로 세번째 방문 목적에 있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환상 속의 자아, 즉 보안관으로써의 자아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정하는 모든 주위 사람들을 자신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고 음흉한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로 치환하게 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병원의 다른 환자들이나 보조인들은 자신에게 뭔가를 숨기고 있는 걸로 보이고, 의사는 불법적인 뇌수술을 자행하고 경찰은 이것을 묵인하는 존재들로 보이게끔 되는 거고..)

왜냐.. 사건이 쉽게 해결되면 보안관으로써의 자아는 더이상 섬에 머물 근거를 잃게 되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서 사람들은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계속 의심을 유발해야 하고 사건은 계속 더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야 하는거다. 그래야 보안관으로써의 자아가 계속 셔터 아일랜드에 머물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여기서 재미있는 거 하나는 바로 '폭풍우'에 있는데..

폭풍우는 영화 중~후반까지 셔터아일랜드에 거세게 몰아쳤고, 그 결과 병원의 시설과 정원이 포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어지럽혀졌지만, 테디가 현실 속의 자아로 돌아온 바로 다음 장면에서는 폭풍우에 대한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돈이 잘 된, 같은 장소의 병원건물과 정원의 나무들)

이건 어떻게 봐야 될까.. 테디가 환상 속의 자아에 빠져있을 때, 그 중에서도 사건의 실체에 대해 가장 혼란스러워했을 때에 폭풍우가 쳤다는 사실을 토대로 유추해 볼 때, 폭풍우를 테디의 환상 속 자아를 셔터 아일랜드에 머물게 한 합리화의 근거이면서 또 하나의 환상, 동시에 혼란스러운 테디의 내면을 표현한 매개체라고 본다면 과연 논리적 비약일까..    

 

결말에 대한 해석..

 

영화 초반부에 코리박사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가장 선호하냐는 테디의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다.

'정신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나는 무엇보다도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환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뇌수술은 그 이후에 생각해 볼 수 있는 수단이다.'라고..

 

환자에 대해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는 코리박사와 주치의인 척은 테디가 환상 속의 자아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테디에게 최후의 방법으로 뇌수술을 시행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기회를 한 번 줘보기로 한다.

테디가 스스로 굳게 믿고 있는 환상 속의 자아의 근거에 결정적인 모순들이 있고 그 환상의 자아가 결국은 거짓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거기서 빠져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일단 테디의 '각본'대로 '무대'를 만들어주고 기꺼이 그 각본의 '배역'을 맡아 '연극'에 동참해 줌으로써 테디를 치료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한 거다.

 

그 연극 덕분에 마지막에 현실의 자아로 돌아온 테디는 갈등한다.

평생 괴물로 살 것이냐, 선량한 사람으로 죽을 것이냐..

 

현실의 자아는 스스로 아내를 죽이고 아이들을 잃고 트라우마을 앓는 정신병 환자.. 즉 괴물이고,

환상의 자아는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정의로운 보안관.. 즉 선량한 사람이다.

 

현실의 자아를 받아들이면, 정신병자 취급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트라우마에서는 벗어날 수 없고,

환상의 자아를 받아들이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는 있지만 뇌수술을 피할 수가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

 

결국 테디는 끝내 현실의 자아를 포기하고, 스스로 환상의 자아를 선택한다.

지금까지는 자신도 모르게 환상 속의 자아를 믿고 있었다면, 이제는 스스로 그게 거짓인 줄 알면서도 믿으려 하고 있는거다.

(이건 다른 의미에서 보면, 그만큼 테디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가 뇌수술에 대한 두려움보다 훨씬 더 크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바로 이 부분.. 테디가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미친 척을 하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소름이 확 돋았는데..

굳이 반전이라는 걸 논하자면,

결국 지금까지 모든 게 테디의 환상을 토대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소반전, 그리고 마지막 이 부분이 대반전이 아니었나 싶다. 

 

셔텨 아일랜드는 곧 주인공 자신이 아닐까..

 

외부로부터 철저하게 고립이 되어 있는 공간..

그래서 자의든 타의든 완벽하게 통제될 수 있는 공간의 다른 이름이 바로 섬일지도 모른다.

 

현실 속의 자아는 타의에 의해서 절대적인 통제를 받고,

환상 속의 자아는 자의에 의해서 절대적인 통제를 받는다.

 

'셔터 아일랜드' 단순한 지명일 수도 있지만, 그대로 직역하면 '차단된 섬' 정도될텐데,

그런 의미에서 셔터 아일랜드를 세상과 단절된 테디 본인 자체, 혹은 그 테디의 내면세계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정신병이 무엇인지 한편으로 알려주는 환상의 수작 !! - 씨네21 / 황진미 -

 

이 영화에 대한 평론가들의 40자평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가는 40자평이다.

 

실제 일반적으로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 중 다수가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이 트라우마를 스스로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 혹은 도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이만큼 정신병 환자의 심리를 디테일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그려낸 영화가 또 있었을까 싶다. 

 

음산하면서도 몽환적인 독특한 미장센이 돋보인 영화..

 

고립된 섬, 폭풍우, 안개, 등대, 절벽, 감옥,, 고립되어 있지만 뭔가 비밀이 있는 듯한 분위기를 이런 배경들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면서 잘 보여준 것 같고,

특히나 꿈에서 아내가 재로 변해 바람에 날라가는 장면이나, 독일장교가 죽어가는 순간에 악보가 어지럽게 휘날리는 장면 등은 몽환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을 잘 살린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반전스릴러가 아닌, 심리 스릴러...

 

'알고 보니 다 주인공의 환상이었더라'는 그저 그런 맥빠지는 반전스릴러로 볼 게 아니라,

트라우마가 어떻게 현실을 괴롭히는지,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결국은 현실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 수 밖에 없게 되는 그 고통스런 과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섬뜩한 심리스릴러 영화가 아닌가 싶다.

 

아울러 그동안 영화 속에서 주로 선굵은 연기를 보여주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모처럼 보여준 섬세한 내면연기가 참으로 반가우면서도 인상적이었던 영화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일까.. 벌써부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는....

 

 

뱀발

 

아직 원작소설을 보지 않은 탓에 그냥 영화만을 근거로 정리해 봤다는 거..

(뭐 꼭 원작과 영화가 같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그거야 감독 마음대로일테니..)

 

어느 기사를 보니 이 영화는 '두 번 이상 봐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영화'라고 써놨던데,

굳이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은 그다지 안 생긴다는 거...

 

그럼에도 만약에 영화를 다시 볼 기회가 생긴다면,

주인공인 테디보다는 코리박사와 주치의 척에게 무게중심을 두고 봐야 그나마 영화를 다시 보는 재미가 있을 듯..

어쩐지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테디를 대하는 말끝마다 끊임없이 "환자"라는 단어를 강조한 코리 박사와,

테디와 같은 보안관으로 나오면서도 총 하나 다루는 것도 영 어설프고, 부하 주제에 꼭 보호자 같은 태도와 말투로 테디를 챙기는 척이 처음부터 상당히 의뭉스럽더라니.. 

 

'식스센스'를 처음 볼 때는 브루스 윌리스에게 집중해서 보다가 결말의 반전을 알고 처음부터 다시 볼 때는 브루스 윌리스를 대하는 꼬마의 태도에 집중해서 보듯이,

이 영화도 다시 볼 때는 주인공보다는 주인공을 대하는 주변인물에 집중해서 보면 처음 볼 때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한 내 해석은 어디까지나 수많은 관점의 해석들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는 거..

이렇게 내용이나 결말이 두리뭉실한(?) 영화의 묘미는,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거 아니겠음?

 

 

아님 말고...

 

 

 

 

-- 댓글에 부쳐 --

 

몇 분께서 댓글로 질문을 적어주셔서, 그에 대해서 제 의견을 몇 자 적어볼까 합니다.

(쓰다보니 본의 아니게 내용이 길어졌네요.. 보실 분만 보시길..)

 

1. 수용소씬도 환상 아닌가..

 

전 아니라고 봅니다..테디가 환상 속의 자아를 만들어서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트라우마 (과거의 기억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보거든요..

근데, 수용소에 대한 장면들은 비참하고 비극적이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만들어낸 환상 속에 굳이 또 하나의 트라우마를 추가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정리한 건 이렇습니다.

테디는 전쟁에 참가해서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직접 보게 되죠.. 그리고 난 후에,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한 수용소 군인들을 학살하게 되고, 자살을 시도한 수용소의 사령관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걸 그냥 옆에서 지켜만 보죠..(고통을 덜어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수용소씬에서 보면 테디는 인간적이면서도 폭력적이고 잔인한 면을 가진, 이중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이 끝나고 보안관이 된 테디는 알콜중독자가 되죠.. 아마 전쟁에 대한 기억을 잊기 위해서 술을 마시게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 와중에 아내가 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게 되고 나중에 아내가 아이들을 죽인 것을 보게 되고 결국은 자신이 아내를 죽이게 되죠..

 

여기서 가만히 보면 수용소에서의 일과 온 가족을 잃게 된 일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을 본 후 그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수용소의 군인들을 학살한 것과, 아이들이 죽은 것을 본 후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아내를 죽인 것.. 그 과정의 인과관계가 거의 비슷하죠..

테디에게 가장 큰 트라우마는 죽은 가족들에 대한 트라우마인데, 여기에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가 공통점이 있다보니까 자꾸 그 두 기억이 겹쳐지는 거라고 봤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수용소에서 죽은 시체들 중의 한 모녀가 자신의 아내와 딸로 오버랩되서 꿈 속에 등장한 장면들입니다. (이 장면들은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수용소에서 죽은 모녀가 자신의 아내와 딸로 변해서 갑자기 눈을 뜨고 테디를 보는 장면, 또 한 번은 둘이 손을 잡고 나타나는 장면이죠.)

 

2. 동굴 속의 그 여자도 환상인가..

 

결론은 그렇다고 봅니다.. 먼저 그 전의 장면들을 한 번 떠올려보죠.. 즉 테디가 어떻게 그 동굴에 갔는지에 대한 겁니다.. 테디는 절벽에서 밑을 내려다보다가 동료인 척의 시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 척은 그의 동료가 아닌 주치의였고 죽지도 않았죠.. 즉 테디는 환상을 본 거죠..

게다가 테디가 절벽 아래로 내려갔을 때에는 절벽 위에서 분명히 보았던 척의 시체가 갑자기 사라져서 보이지 않죠.. 그리고 갑자기 좀 쌩뚱맞게 절벽에서 수많은 쥐떼들이 등장하죠..그 다음 장면에 테디가 동굴에 들어가게 되죠..

척의 시체는 분명한 환상이었고, 쥐떼는 그것을 확실히 암시하는 또 하나의 환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하자면 테디는 환상에 이끌려 동굴을 발견해서 들어가게 되고 진짜 실종자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는 거죠.. 환상 속에서 발견한 동굴, 그 동굴 속의 실종자.. 결국은 또 하나의 환상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동굴 안에서 여의사가 테디에게 했던 얘기들은 대부분 뇌수술의 위험성과 불법성, 그리고 병원 진료진들의 비도덕성에 관한 내용이었고, 등대에서 이런 수술들이 자행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이 여의사의 말을 듣고 테디는 등대로 향하지만, 등대에는 아무 것도 없죠..

 

테디는 폭력적인 성향 때문에 곧 뇌수술을 받게 될지도 모를 운명이었고, 자신이 받게 될지도 모를 뇌수술이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등대에서 은밀히 시행되었을거라고 평소에 의심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래서 뇌수술, 혹은 뇌수술을 받게 될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 환상 속의 여의사를 통해 합리화를 한 게 아닌가 싶네요..

실제 테디가 등대에 갔을 때, 이미 코리박사는 평소에 테디가 환상 속에서 등대 내부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이런 테디의 생각이 맞게 보이게끔 일부러 등대에 뭔가 비밀스런 시설이 있는 것처럼 경찰들에게 빈 총을 들고 보초까지 서게 하죠..

왜냐.. 등대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테디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테디의 환상에 모순이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테디를 동굴까지 가게 만든 척의 시체도 환상이었고, 동굴 속에서 만난 여의사의 결정적인 증언들도 결국 사실이 아니었다는 점으로 볼 때, 동굴 속에서 만난 여의사를 테디의 환상으로 보는데 큰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게다가 애당초 실종 사건 자체가 테디의 환상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가정하에 보면, 테디가 이 실종사건을 계속 합리화시키기 위한 연장선상에서 가상의 실종자, 즉 여의사까지 만들어낸게 아닌가 싶네요..

 

이상입니다.

제 생각이 맞다는 건 아니구요.. 그냥 단지 댓글에 달아주신 질문에 대한 제 생각이 이렇다는 겁니다..

 

아.. 그리고 다른 분의 리뷰를 보다가 제가 놓친 걸 하나 발견했네요..

 

영화 초반에 테디가 병원의 다른 환자를 심문할 때, 펜으로 종이를 막 긁는 장면인데요..

테디는 그 환자가 펜으로 종이를 거칠게 긁을 때 나는 소리를 유난히 싫어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얘기죠.. 그건 테디가 그 날 처음으로 그 환자를 만난 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그 환자를 옆에서 봐왔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구요..

결국 이것도 테디가 이미 오래전부터 셔터 아일랜드에 머물러 있었다는 증거 중 하나가 아닌지..

 

되집어 보면 볼수록 모든 장면 하나하나에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네요.. 

같은 영화를 본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들을 조합해서 같이 퍼즐을 완성해가는 것 같은 느낌... 꽤나 쏠쏠한 재미가 있는 것 같네요..

 

출처
네티즌리뷰 knagne400님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