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사람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언러브드 2014. 3. 14. 11:58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그리고 러너)
1949년~****년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하루키는 이렇게 자신의 묘비명을 미리 결정해 두었다.

그런데 러너(runner)라고? 이 글을 읽고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는 아마추어 마라토너이며 마라톤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썼다.

하루도 쉬지 않고 자신만의 페이스를 조절해 글을 써서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고 또 작품을 쓸 수 있는 체력과 지구력,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매일 달리고 풀코스 마라톤에도 나갔다.

그러니까 그는 평생 달리면서, 또 글도 썼다. 묘비명은 그의 삶 자체다. 


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 

매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오르는 일본의 대표 소설가.

그가 30세가 되던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한 뒤 데뷔 8년 만에 <상실의 시대>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2003년 펴낸 <해변의 카프카>가 2006년 프란츠 카프카 상을 받으며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선 최초의 동양 작가라는 평을 얻었고,

5년만의 신작<1Q84> 또한 호평을 받았다. 소설 이외에도 요리책, 기행문, 대담집, 번역서 등 다채로운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 후반. 그리스의 작은 섬 미코노스에서는 동양에서 온 한 남자가 화제였다.

전체 인구라고 몇백 명이 전부인 작은 섬에 그것도 성수기가 지나 적막감만 맴도는 곳에 찾아온 것도 의아했지만,

그가 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섬 둘레를 달리는지 그 이유가 더 궁금했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 따사로운 태양 아래 유유자적한 삶을 즐기는 섬사람들의 정서로는 맹목적으로 달리고 있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지나가면 뚫어지게 바라보기도 하고, 노인들은 아예 대놓고 훈계까지 하고는 했다.

그것도 말이 통하지 않아 영어를 할 줄 아는 젊은이를 통하면서까지 말이다. 


“왜 이 길을 달리는 거요?”
“달리기를 좋아해서요.”
“그 말은 무슨 볼일이 있어서 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군.”
“볼일은 없습니다.”
“어디까지 달릴 생각이오?”
“슈퍼 파라다이스 비치까지요.”
“쭉 달려가는 거요?”
“네, 달리기를 좋아하니까요.”
“왜 해변까지 달려야 하죠?”
“달리기를 좋아한다니까요!” 

이 남자의 이름은 무라카미 하루키. 그는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일본을 떠나 로마와 그리스 지역을 전전하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의 유럽 생활은 3년간이나 계속됐었는데 그 기간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쓰고 달렸다.

이때 쓴 글이 바로 유명한 <먼 북소리> <상실의 시대> <댄스, 댄스, 댄스>다.

당시 그는 현지인들로부터 매일 달리는 특이한 일본 사람이라고 유명세를 얻을 정도였다.

왜 그는 대체 이역만리 낯선 땅에 와서 현지인들의 의아한 눈초리까지 받아가면서 달려야 했을까? 

 


  


소설을 써보자

그가 처음부터 달리기를 즐긴 것은 아니었다.

그의 달리기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는데 그 시작은 33살, 본격적인 전업 소설가의 길을 걷게 됐을 때와 맞물린다.

그가 소설을 쓰기로 한 것은 1978년 4월 1일 오후 1시30분 전후,

진구 구장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히로시마 카프의 야구경기를 보고 있을 때였다.

외야석 경사면에 깔린 잔디 위에 누워 맥주를 마시면서, 때때로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느긋하게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1회 말 야쿠르트 선두타자 데이브 힐튼이 좌측으로 안타를 쳤다.

배트가 강속구를 정확히 맞혀 때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소설을 써보자.” 

맑게 갠 하늘과 이제 막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 잔디의 감촉과 배트의 경쾌한 소리는 뭔가 써보고 싶다는 강력한 깨달음을 줬고,

그렇게 해서 그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써서 문예지 <군조(群像)>의 신인상 응모작으로 출품했다. 그리고 당선된다. 

소설가가 되기 전의 그의 삶은 어느 면으로나 특별할 것은 없었다.

유년시절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으며 특별한 재능도 보이지 않았다.

야구와 재즈를 즐겼지만, 직접 하는 데는 그다지 능숙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연극과 영화를 전공했고, 졸업한 후에는 ‘피터 캣’이라는 재즈바를 8년 동안 운영했다.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녹초가 되도록 일을 했다.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어온 가운데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빚도 갚고 가까스로 안정된, 바로 그 시점에

그는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라는 것을 인식하고 소설가가 된 것이었다.

얼마 뒤 그는 재즈바를 처분하고 전업 소설가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는다. 물론 모두가 말렸다.

재즈바는 이제 자리 잡았고, 소설가의 삶은 불안정했으니까.


“어쨌든 2년간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줘, 그래서 안 된다면 다른 데서 작은 가게를 열면 되지 않겠어?

아직 젊으니까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

 

그는 아내에게 그렇게 선언하고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글을 썼다.

그는 곧 소설을 쓴다는 것은 멋지지만, 그것은 재능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부적인 재능 없이 태어난 자신을 위해 한정된 능력을 집약해서 쏟아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고

집중력과 지구력을 높이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이 바로 달리기였다.
1982년 그의 나이 서른세 살. 아직 충분히 젊지만 그렇다고 ‘청년’이라고 말할 수 없는 나이였다.

33살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나이 아닌가! 그것이 당시 그의 나이였다.

그런 나이에 그는 늦깎이긴 하지만 러너로서, 소설가로서 본격적인 출발점에 섰던 것이다. 


글쓰기와 삶은 마라톤과 같다

  하루키는 누구나 알 만큼 성공한 소설가이다.

일본의 권위지 <아사히신문>이 지난 1천 년간 역사상 가장 뛰어난 문인에 관해 여론 조사를 벌인 결과

하루키는 생존 문인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어왔으며, 그의 대표작들은 세계 31개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스테디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과 얼렁뚱땅 등장하는 비유들은 언제 읽어봐도 유쾌하다.

얼핏 보면 뛰어난 재능으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글을 쑥쑥 뽑아내는 듯하지만

실제로 그는 집중력 있게 글을 쓰기 위해 마라톤으로 체력을 다지고 생생한 체험을 얻기 위해

여행, 음악, 스포츠 등 전방위적으로 문화를 즐기는 노력형 작가다. 

그의 글쓰기 방식은 여타 작가들과 다르다. 대부분의 작가가 저녁형 인간으로 모두가 잠든 밤에 글쓰기를 즐겼다면,

그는 아침형 인간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푸른 새벽 기운을 느끼며 글을 썼고,

글이 막힐 때 술과 담배, 커피로 상상력의 찌꺼기를 쥐어짜 내는 대신 다른 일을 찾아서 했다.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기행문을 쓰고 기행문을 쓰다가 지겨워지면 번역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아내와 영화도 보러 가고, 맥주를 마시며 야구를 보기도 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3년간 그리스의 스팟체스, 미노스, 로마 등 유럽 일대에서 머물기도 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 대신 시종일관 유쾌한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은 모두에게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42.195km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것은 또 사는 것의 메타포(metaphor)이기도 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상대인 자신과 싸우면서 매일 일정량의 글을 쓰고 또 달리기를 하는 하루키.

러너로써 그는 풀코스 마라톤을 26번 완주했고, 보스턴 마라톤에만 7번 나갔다.

100킬로미터 마라톤에도 참가했으며, 철인 3종 경기에도 나갔다.

러너로서의 삶을 피력한 묘비명까지 써놓았을 정도다.

그는 일찌감치 인생과 글쓰기는 마라톤과 같은 것이라고 간파한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천천히 즐기다 보면 언젠가는 결승점에 도달하리라는 것을 마라톤을 통해 알았고,

그것을 글쓰기에도 적용했다. 전업으로 글을 쓰기로 작정했으니 문학적인 조락(凋落)*을 겪지 않고,

평생 자기 자신이 만족하는 글을 쓰고 싶다는 그의 꿈이 담겨 있다.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아라.”

 

50년간 써왔던 <파우스트>를 끝맺으면서 가 했던 말처럼 글을 쓴다는 것은 긴 호흡이 필요했으니까.

그에게 달리기는 글쓰기에 필요한 체력과 정신력을 동시에 제공해 준 셈이다. 

달리면서 헉헉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시간을 새겨 나간다.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스치면서 서로의 호흡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 흐름을 느끼게 된다.

개개의 기록도, 순위도, 겉모습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평가하는가도, 모두가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러너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하나의 결승점을 내 다리로 확실하게 완주해가는 것이다.

-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에서 


달리는 것은 그저 팔다리를 움직여서 목표 지점에 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스쳐가는 풍경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손끝으로는 바람을, 발끝으로는 대지의 기운을…… 육체로부터 전해지는 신호와 끊임없이 교신하며

페이스를 조절해야 하는 쉴 틈 없이 즐겁고 바쁜 운동이다.

마라톤이야말로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아야 결승선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결국 마라톤도, 글쓰기도, 좋아하지 않고 즐기지 않으면 끝까지 버틸 수가 없다.

그렇게 주어진 길을 응시하며 즐기다 보면 어느덧 결승점에 도달한다.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삶은 마라톤과 같다’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겠지만 어쩔 수가 없다.

꿈, 사랑, 열정 등 모든 것을 대입해도 마라톤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마라톤처럼) 서두르지도 쉬지도 말아야 한다.” 


하루키, 그에게 두 가지 삶의 지침이 있다

  사실 그도 처음 <상실의 시대>를 발표했을 때

당대 문학 거장들에게 ‘외국 번역서를 많이 읽고 쓴 버터 냄새나는 책’이라는 악평을 들었지만

 

“인생은 그런 거지 뭐.”

“그게 어때서”

 

이 두 가지 신념으로 기쁨도 슬픔도 가뿐하게 넘겼다고 한다.
우리도 꿈을 이루는 길이 내 맘같이 되지 않을 땐 “인생은 그런 거지 뭐.” “그게 어때서”라고 가뿐히 넘기며

그냥 천천히 자신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걸 어떨까?
삶의 제약들에 발목 잡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디딤돌로 삼아 자신을 보다 높은 곳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결과적으로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얻을 수 있다.

소설가든 육상 선수든 평범한 직장인이든 원칙은 같다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결국,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의 삶을 좋아한다는 게 되어 버리고 만다. 

 *조락(凋落):초목의 잎 따위가 시들어버리는 현상. 특정한 분야에서 반짝 빛을 보다 일찍 제 빛깔을 잃은 사람들을 빚 대어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