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영화

御法度(고하토)

언러브드 2013. 8. 1. 22:26

 

욕망의 모호한 대상

오시마 나기사는 항상 문제를 안은 감독이다. 단지 그의 작품세계가 논란의 대상이 된다는 의미에서만은 아니다.

오시마는 모든 체제에서 ‘문제’를 탐지해내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다.

 

덕분에 그의 영화는 일본 검열당국와 번번이 마찰을 빚고, 제작사와 논쟁을 벌였으며, 국제영화제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도 1959년에 [사랑과 희망의 거리]로 데뷔한 그가 54번째로 만든 영화가 1999년작 [고하토]라는 걸 생각하면

노장에 대한 존경심이 솟구쳐 오른다. 

 
활동은 뜸해졌지만 결코 카메라까지 둔해진 건 아닌 오시마는 일본인들이 가장 ‘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무라이 제도에 시선을 돌린다. 

그것도 [바람의 검, 신선조](2003년작)로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진 막부 말기의 실제 무사조직 신선조를 공격하러 나선다.

[바람의 검, 신선조]를 보고 그 우익적 정서에 반감을 느꼈던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TV 드라마나 만화, 그리고 영화와 게임을 통해 신선조를 낭만적으로 미화시키는 많은 일본인들에게 오시마의 [고하토]는

무모한 돌격이나 신성모독으로 보이지는 않았을까?

엄격한 규율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 신선조의 사무라이들 사이에 갑자기 나타난 18세 소년 카노 소자부로(촬영당시 16세였고

[연애사진]에서도 주연을 맡았던 류헤이 마츠다)의 아름다움은 ‘남성다움’에 집착하는 이들 조직 안에 기묘한 기류를 만든다.

그와 동기인 효조 타시로(아사노 타다노부)는 노골적으로 그에게 구애하고, 대장 곤도 이사미(최양일)도 평소와는 다른 눈빛을 보낸다.

동성애에 전혀 관심이 없는 많은 병사들도 이 눈부신 소년에게 특별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하자, 냉정하고 관찰력이 뛰어난

히지까따 토시조(기따노 다께시)는 과연 이 소년의 존재가 조직에 도움이 될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한다. 

꼭 성적인 호기심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아름다운 인물의 존재는 종종 안정된 집단을 불안하게 만든다.

동성들은 그/녀가 자신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까봐 겁내고, 이성들은 그/녀가 자신을 지나치게 매혹시킬까봐 두려워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용기 있게 접근을 시도하는 이들은 자신의 성공(혹은 실패)을 다른 이들과 비교하게 되고

그 과정은 종종 절망과 좌절, 배신감을 낳게 된다.

더구나, 카노처럼 초연하면서도 유혹적이고 앳되면서도 잔혹한 인물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욕망이 억압적인 사회에서 위협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오시마가 [감각의 제국]에서도 되풀이한 주장이다.

또한 오시마는 소위 말하는 ‘무사도’의 엄격한 규율이 풍기는 것이 피비린내만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신선조 특유의 배타적인 분위기는 남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이 집단에서 서로에 대한 집착을 낳게 마련이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지혜가 엿보이는 검술교사 신지(타게다 신지)는 남성들간의 의리라든가 우정 안에 숨은 동성애적인 그림자를 감지해낸다. 

사소한 잘못만으로도 참수형을 당해야 하고, 신참에게 그 집행을 맡기거나,

어떤 모욕도 참기를 거부하고 목숨으로 그 값을 치르게 하려는 등 생명을 아깝지 않게 여기는 신선조의 ‘기상’도 오시마의 공격 대상이다.

끝까지 그 내면을 알기 어려운 카노가 부잣집 아들로서의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사무라이가 되고자 하는 데는

이 ‘죽음에의 매혹’도 작용했으리라는 것이 이 영화의 암시이다.

성적인 쾌감이나 연인에게 자신을 완전히 내맡기는 행위를 죽음과 연결시키는 것은 그리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이 경직된 사회는 자멸에 이르게 되고(신선조는 곧 분열과 전쟁에 휘말려들게 된다.)

카노의 존재는 마치 그 전조와도 같다.

마지막 장면에서 히지카타가 단숨에 베어 버리는 벚꽃나무가 전통적인 일본을 상징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벚꽃은 봄의 전령이자 일본인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아름다움이고 눈부시지만 순식간에 덧없이 사라지는 젊음이기도 하다.

그것을 사무라이 조직의 지도자 중의 하나인 히지카타가 일본도를 뽑아 쓰러뜨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이야기만큼이나 모호하다.

하지만, 이 모호함이야말로 모든 것을 분명히 밝히고 모든 구성원을 특정한 범주 안에 가두고자 하는,

모든 것을 흑백논리의 틀 안에 가두려는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최고의 무기인지도 모른다.

마치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감싸는 깊은 안개처럼 욕망은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들지만 동시에 순식간에 무로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뉴스 글_이소연 ]  | Daum 영화 평론가 | 2004.04.23 13:59:18